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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1년]]과 [[863년]], [[864년]] 아버지에 독일왕 루트비히에 대항하여 반란을 일으켰는데 곧 그의 동생들 [[프랑크의 루트비히 3세|소 루트비히]]와 [[카를 3세|뚱보 카를]]도 아버지에게 반란을 일으켰다. 한편 아버지 독일왕 루트비히는 863년 아들의 반란을 두려워하여 [[케른텐]]의 그의 영지를 침공했다. [[프랑크의 루트비히 2세|독일왕 루트비히]]는 비밀리에 군다카르에게 사자를 보내 협상, 군다카르는 자신의 군사를 이끌고 루트비히에게 갔고 카를로만은 군다카르를 해임하고 케른텐을 직접 차지하였다.
 
[[863년]] [[판노니아]] [[변경백]]직에서 해임되었다. 그를 판노니아 변경백에서 해임한 아버지 [[프랑크의 루트비히 2세|독일인 루트비히]]는 빌헬름 등의 관료를 파견하는 한편 모라비아 부족장 엔겔샬크 등을 판노니아 변경백에 임명하여 그를 견제했다. [[864년]] 독일왕 루트비히는 아들들과의 반란에 시달리면서 세 아들에게 영토를 나누어 주었는데 카를만에게는 [[바이에른]], 소 루트비히에게는 [[작센]], 뚱보 카를에게는 [[슈바벤]]을 주었다. [[865년]] 그는 [[프랑크푸르트]]에서 [[바이에른]]의 왕으로 즉위하였다.
 
[[866년]] 카를로만은 영토 분할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하여 케른텐 후작 군다카르 등을 이끌고 반란을 일으켰다가 진압되었다. [[869년]] [[동프랑크 왕국]]의 종주권을 거부하는 [[모라비아]]를 상대로 전쟁을 벌였다. 5년간의 교전 끝에 [[874년]] 모라비아의 부족장들은 동프랑크 왕국의 종주권을 인정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