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눌푸스 카린티아이: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70번째 줄:
 
==== 종주권 문제 ====
비만왕 카를 3세가 사망한 후, 혹시 모를 [[서프랑크 왕국]]의 로타링기아의 영유권을 주장할 것에 대비하여 [[서프랑크 왕국]]에 대한 동프랑크의 우선권을 선언했다. 뒤에 그는 자신의 서자 [[츠벤티볼트]]를 로타링기아의 왕으로 임명한다.
 
[[893년]] [[1월 28일]] [[외드]]가 폐위되고 [[샤를 3세 (서프랑크)|단순왕 샤를]]을 추대하자, 그해 [[2월]] 아르눌프는 일단 그의 즉위를 승인했다. [[샤를 3세]]가 13세의 나이로 [[서프랑크]]의 왕에 즉위하자 아르눌프는 소년이 나라를 통치하는 것이 가능한가 여부를 묻고는, 내전을 끝내기 위해 [[외드]]와 샤를을 [[보름스]]로 오도록 지시했다. [[895년]] [[5월]] [[외드]]는 [[보름스]]로 와 자신의 [[서프랑크 왕국]]의 왕위를 주장했다. 그러나 [[샤를 3세 (서프랑크)|단순왕 샤를]]은 자신의 고문의 의견을 받아들여 아르눌프의 출석 요구를 거부하고, [[보름스]]로 오지 않았다. [[샤를 3세 (서프랑크)|샤를]]이 자신의 명령을 거역한데 크게 화가 난 아르눌프는 [[외드]]를 지지하였으며, 서자 [[츠벤티볼트]]에게 [[로트링겐]]의 왕위를 넘기고 직접 통치하게 했다. 아르눌프는 [[츠벤티볼트]]에게 [[서프랑크 왕국]]을 감시하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