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크루아 전투: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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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역상자 30년 전쟁}}
'''로크루아 전투'''는 [[1643년]] [[5월 19일]] 벌어졌으며 [[콩데 공작 루이 2세 드 부르봉|앙갱 공작]](Duc d'Enghien)이 지휘하는 [[프랑스]] 군이 [[프란시스코 데 멜로]](Francisco de Melo) 휘하의 [[스페인]] 군과 교전하여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 서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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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요성 ==
[[파일:HeimBattleRocroy.jpg|left|thumb|right|250px|로크루아 전투에서 프랑스군을 지휘하는 앙갱 공작]]
이 전투는 [[마자랭]](Mazarin)과 훗날 위대한 [[콩데 공작 루이 2세 드 부르봉|콩데 공작]](Great Condé)이라 불리게 된 앙갱 공작에게에게 중요한 정치적 중요성을 지닌 승리였다. 비록 역사가들이 스페인군은 끊임없는 프랑스군의 포격 속에서 계속된 기병들의 돌격을 격퇴했는데도 멜로의 [[독일]], [[왈론]], [[이탈리아]] 부대가 전투 초반에 항복했기 때문에 패했음을 강조한다 해도, 이는 근 한 세기 동안 스페인이 야전에서 입은 패배중 가장 결정적인 것이었다. 로크루아는 스페인 군사교리의 우월성이 종결됨을 의미하기도 한다. 스페인군은 반란으로 인해 지배권을 상실한 [[카탈루냐]]와 이탈리아의 주요 전선에서 프랑스와의 전쟁을 성공적으로 수행하여 잃어버린 땅을 되찾을 수 있었지만, 그동안 스페인의 국력은 고갈되어, [[포르투갈]]의 반란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부대를 파견하지 못했고, 결국 포르투갈의 독립운동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뒨 전투]](Battle of the Dunes) (이 전투에서 스페인 군은 로크루아 전투의 승리자 [[콩데 공작 루이 2세 드 부르봉|앙갱]] 공작의 지휘를 받았다.)에서 스페인이 패한 후에 선형 전술은 확실하게 테르시오를 압도하게 되었고, 많은 나라들이 테르시오 대신 선형전술을 채택하게 되었다. 1659년 [[피레네 조약]](Treaty of the Pyrenees)은 프랑스에 유리하게 체결되었다. 이 조약은 새로운 국제질서를 확고하게 하였으며 그 시작은 로크루아 전투에서부터였다.
 
== 미디어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