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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ZhangQianTravels.jpg|thumb|300px|장건의 원정(BC 138~BC126)]]
'''장건'''(張騫, ? ~ [[기원전 114년]])은 자는 자문(子文)이며 지금의 [[산시 성 (섬서성)|산시 성]] 성고현(城固縣) 사람으로 기원 전 2세기 중국 [[한나라]] 때 여행가이자, 외교관이었으며 탁월한 탐험으로 [[실크로드]]의 개척에 중대한 공헌을 하였다. 그는 한나라 때 서역으로 가는 남북의 도로를 개척하였으며, 서역의 [[한혈마]], [[포도]], [[석류]], 복숭아 등의 물품을 가져오기도 했다.
 
== 역사 ==
[[기원전 139년]] 한나라 건원 4년, 당시 한나라는 변방을 어지럽히는 [[흉노]]에 대항하기 위해 [[대월지]]에 대한 동맹을 맺으려 사자를 모집하였다. 장건이 지원을 해서 지원자 100명의 수행원을 거느리고, 서역으로 가서 대월지국으로 향하였다.
 
=== 배경 ===
 
=== 대완국 ===
그 후 [[흉노]]의 땅에서 탈출에 성공하여 흉노 서쪽에 있는 [[대완]]에 이르렀다. 대완은 익히 한나라의 강성함을 알고 있었기에 장건을 환대하고 대월지까지 길을 안내해 주었다.
 
[[대월지]]는 [[흉노]]에게 패배한 연후에, [[오손]]에 쫓겨서 더욱 서쪽으로 이동해 있었다. 장건은 [[강거]]로 들린 후에 드디어 대월지에 도착하였다.
 
=== 귀향 ===
실의에 빠진 장건은 귀향 노선을 [[곤륜산맥]]을 타서, 강 일족의 지배지를 통과하는 것을 선택했지만, 또 다시 흉노에게 붙잡힌다. 일 년 남짓 지나 군신 선우가 사망한 틈을 타서 탈출, 기원전 126년에 마침 한나라로 귀환했다. 출발할 때에 100명 남짓 있던 수행원은 두 사람만 남아 있었다.
 
동맹은 성립되지 않았지만, 장건이 가지고 돌아온 서역에 대한 지식은 지극히 귀중한 것이었고, 그때까지 전혀 이해하지 못했던 서역의 사정을 듣고, 한은 새로운 전략을 세울 수 있었다. 이 공로에 의해 장건은 태중대부가 된다.
 
== 천산남로 ==
장건이 서역을 여행하는 도중에 촉(사천) 명산의 대나무와 옷감을 현지 사람이 가지고 있는 것을 보고, 어떻게 손에 넣었는 지 묻자, 인도의 상인으로부터 샀다고 했다. 이것에 의해 촉으로부터 [[윈난]] → [[미얀마]]를 통하는 인도로 연결된 루트가 있는 것을 알고서, 장건은 무제에게 [[윈난]]을 한에 복속시키라는 건의를 몇 번이나 한다. 이 루트를 통하여 서역으로 연결된 루트를 개척한다.
 
한나라는 [[흉노]]에 대항하는 또 다른 방법으로 오손(烏孫)과의 동맹을 생각하고 기원 전 119년에 장건을 오손의 사자로 보낸다.
* [[한서]], 장건열전
 
== 바깥고리외부 링크 ==
* [http://navercast.naver.com/peoplehistory/foreign/1441 네이버캐스트 - 장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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