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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딜 정책과 재선 ====
그는 취임 직후 대공황에 대해 즉시 [[뉴딜 정책]]이라고 불리는 경제에 대한 정부의 개입(적극적인 경제정책)을 행하였다. 뉴딜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와 부흥뿐 아니라 사회개혁도 포함하는 것으로, 실행을 위해서는 행정부의 권한이 필요한데, 의회는 대통령에게 많은 권한을 부여하여 그 정책 실행을 용이하도록 배려하였다. [[노동자]]들이 민주[[노조]]를 만들어 [[자본가]]와의 교섭으로써 노동조건 및 사회적 지위향상을 이루어가는 권리(대한민국에서는 [[대한민국 헌법]] 33조에서 존중)인 [[단체 교섭권]]존중, [[노동3권]]을 침해하는 [[부당노동행위]] 규정(피터 와그너 법 제정하제정) 같은 [[노동자]]의 권리 향상과 [[테네시 계곡 개발공사]](TVA) 등의 대규모 공공근로에 의한 [[실업자]]구제대책 및 [[사회 보장]] 충실 같은 정책을 실시하며 경제대공황 극복을 도모했지만, 좀처럼 성과가 오르지 않았다. 또 선린 외교 정책을 주장하여 라틴 아메리카 여러 나라와의 우호 관계를 증진하고, 경제원조로 서반구 여러 나라의 결합을 강화하였다. 유럽 전체주의의 침략에 대해서는 자유민주주의 국가 방위에 진력하고, 일본의 중국 침략에도 반대, 평화를 원했다.<ref>{{글로벌세계대백과사전2}}</ref>
 
[[1935년]] 여름부터 경기가 상승되어 1936년 대통령에 재선되었다. 1937년 경기는 다시 악화되기 시작하여 후기 뉴딜로써 대처하였는데, 1939년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여 1941년의 제2차 세계 대전 참전에 의한 군수 증대 덕분에 미국의 경제는 회복하여 실업자도 격감했다. 뉴딜 정책의 효과에 대해서는 지금까지도 논의의 대상이 되고 있고, 과연 2차 세계대전이 없었다면 경제 침체를 완벽히 극복할 수 있었는지에 대해선 많은 의견이 엇갈린다.([[1941년]] [[진주만 기습]]으로 참전하기 전까지, 미국 경제는 실업률이 15%를 상회하는 등, 체제 자체가 붕괴하는 대파국은 넘긴 상황이었지만 완벽히 경기가 회복됐다고는 절대 할 수 없는 상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