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마르첼로 2세: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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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임명한다는 교황 소칙서는 1550년 5월 24일 새 교황 [[교황 율리오 3세|율리오 3세]]에게서 나왔는데, 바티칸 도서관 사서가 아니라 거룩한 로마 교회의 사서(Bibliothecarius Sanctae Romanae Ecclesiae)라는 직함을 받았다. 왜냐하면 그가 도서관을 담당하게 된 최초의 추기경이었기 때문이다.<ref>Domenico Zanelli, ''La Biblioteca Vaticana'' (Roma 1`857) 28–29.</ref> 임기 동안 그는 특히 기독교 고고학 문제에 대한 조언을 받은 오누피로 판비니오 뿐만 아니라 마르첼로와 실레토 등을 기용하였다. 그는 그리스어 필사본 143권을 포함하여 바티칸 도서관에 500여권의 필사본을 비치하고 이들 목록을 손수 기입하였다. 이 기입장은 오늘날까지 남아있다(Vaticanus Latinus 3963).<ref>Zanelli, ''loc. cit''.</ref>
 
[[Image:Coat of arms marcellus II.jpg|thumb|left|교황 마르첼로 2세의 문장]]
1549년 12월 3일 바오로 3세의 후임자를 뽑는 콘클라베(1549-1550)가 소집되어 마르첼로 체르비니를 포함하여 총 51명의 추기경이 참석하였다. 처음 표를 받은 후보는 폴 추기경과 스폰드라티 추기경, 카르피 추기경, 리돌피 추기경이었다. 카를 5세의 지지를 받은 폴은 첫 번째 투표에서 두 표를 받았지만, 이후 더이상의 표를 받지는 못했다. 카를 5세의 지지를 받은 또 다른 후보로는 스페인 부르고스 교구장 후안 알바레즈 데 톨레도가 있었지만, 전임 교황 바오로 3세의 조카인 알레산드로 파르네세와 프랑스인 추기경들의 강한 반대로 그 역시 낙선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