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엽 (승려):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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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명 = 김일엽, 1935년 무렵
| 출생일 = [[1896년]] [[4월 28일]]
| 출생지 = {{국기나라|조선}}
[[평안남도]] [[룡강군]] 삼화면 덕동리
| 사망일 = [[1971년]] [[2월 1일]]
| 사망지 = [[대한민국]]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예산군)|덕산면]] 사천리 20번지 [[수덕사]] [[견성암]] 별실
| 직업 = 작가, 시인, 승려, 언론인, [[초등학교]] 교사, 언론인, 수필가
| 거주지 =
| 국적 = {{KOR}}
| 학력 = [[이화여자전문학교]] 졸업
| 부모 = 아버지 김용겸, 어머니 이말대, 계모 한은총
| 배우자 = 이노익(1921년 이혼), 하윤실(1929-1931년)
| 자녀 =
| 친척 = 동생 [[김진범]], 여동생 [[김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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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오마이뉴스
|저자=이정근
|날짜=2005-08-17
|확인일자=2008-09-05
}}</ref> 일엽(一葉)이라 하면 달마대사가 한 잎의 갈대로 배(舟)를 삼아 중국으로 건너간 고사에서 유래하지만 26세에 요절한 일본의 전설적인 작가 [[히구찌 이찌오]](一葉)가 1896년 사망하던 해에 김일엽이 태어났기 때문에 김일엽이 문학작품 활동을 시작할 무렵 그 의미를 살려 춘원 이광수가 지어준 이름인 것이다.<ref name="gyem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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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혜석]]이 이혼의 아픔을 안고 충남 예산에 있는 덕숭산 자락을 찾아든 이유는 거기에 나이도 같은 동갑이고 잡지 <폐허>와 <삼천리>에서 동인으로 활동하던 김일엽이 파란만장한 32년 속세의 삶을 접고 여승으로 수도생활을 하고 있는 수덕사가 있기 때문이었다. 몸과 마음이 지칠 대로 지쳐 있던 나혜석은 [[수덕사]]로 직행하지 않고 일주문 바로 옆에 있는 [[수덕여관]]에 여장을 풀었다.<ref name="gyemong"/> [[나혜석]]이 수덕여관에 와 있다는 전갈을 받은 김일엽이 암자에서 내려와 두 사람은 반갑게 회포를 풀었지만 한 사람은 여성을 옥죄는 사회제도가 한없이 원망스러운 이혼녀이고 또 한 사람은 그것을 초월한 여승이었으므로 두 사람의 대화는 평행선을 달렸다.<ref name="gyemong"/> "너처럼 중이 되겠다"는 나혜석의 부탁에 "너는 안 돼"라고 만류했지만 "조실스님(만공)을 뵙도록 도와줘"라는 나혜석의 간청에 못 이겨 김일엽은 만공스님 면담을 주선했지만 답은 똑같았다.<ref name="gyemong"/>
 
이때 [[나혜석]]은 만공선사로부터 "임자는 중노릇을 할 사람이 아니야"라는 일언지하의 거절을 당했지만 포기하지 않고 수덕여관에 머무르며 글을쓰고 그림을 그렸다.
'중 시켜 달라'고 시위하던 중 "엄마가 보고 싶어 현해탄을 건너 왔다"는 열네 살 앳된 소년이 찾아왔다.<ref name="gyemong"/> 이는 김일엽이 일본 유학시절 일본 명문가 출신 오오다 세이죠와의 사이에 낳은 사생아이며 김일엽의 아들인 김태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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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춘을 불사른 뒤》(1974)
* 《행복과 불행의 갈피에서》(1964)
* 《미래세가 다하고 남도록》(1974) 2권
* 《수덕사의 노을》(1976)
* 《청춘을 영원하게》(1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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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8년]] 속세에 환멸을 느끼고 입산한 이후에는 [[불교]]적 색채의 사념적인 작품들이 많다. 만년작들 중 시 오도송(悟道頌), 절구 등에서는 어느 특정한 현상이나 형식에 집착하지 않고 사물, 중생을 자신과 하나로 보는 미학을 보여주었다. 수필 [[불도를 닦으며]]는 입적 내력과 [[불교]]적 깨달음이 깊이 아로새겨져 있다. 그리고 수필집 [[청춘을 불사르고]](1962)와 [[행복과 불행의 갈피에서]](1965)는 인생에 대한 사색과 불교 정신을 주제로 하고 있다.
 
== 가족 관계 ==
대한민국의 정치인 [[정일형]]이 그의 의붓 동생이었고, 여자 법조인인 [[이태영]], 목사 겸 정치인 [[이윤영 (1894년)|이윤영]] 등과도 인척관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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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타 ==
* 일엽은 그의 호이자 [[불교]] 승려가 된 뒤의 법명으로도 썼다. 이는 춘원 [[이광수]]가 그의 문체와 문장력을 높이 평가하여 '한국 문단계의 일엽'이 되라는 뜻에서 일엽이라 지어주었다.
* 아들 김태신은 일본에서 화가로 활동했고, [[제주도]] 출신 한국인 여자와 만나 결혼, 자녀까지 두었으나 도미, [[1988년]] [[미국]] [[뉴욕]]에서 승려가 되었다.
* 당시 전체 [[불교]] [[승려]]들 중에서 드물게 만공 선사의 법을 직접 전수받았으며, 이는 비구니로서는 유일한 일로 알려져 있다.<ref name="seonm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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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 자료 ==
* {{서적 인용
|저자=박제천
|제목=한국의 명시를 찾아서
|날짜=1998-02-01
|출판사=문학아카데미
|출판위치=서울
|id=ISBN 89-400-4005-8
|장=여성 시인들
|꺾쇠표=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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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 외부 고리링크 ==
* [http://legacy.www.hani.co.kr/section-005100032/2002/04/005100032200204011813334.html 1920년 여성잡지 창간해 여성해방 외친뒤 비구니 삶]
* [http://www.kdlpnews.org/reader/view_pastarticles.asp?id=200107061000000010 <nowiki>[</nowiki>한국의 여성운동가들2<nowiki>]</nowiki>성, 그 억압된 금기에 도전했던 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