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난도 루고: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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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난도 아르민도 루고 멘데스'''({{llang|es|Fernando Armindo Lugo Méndez}}, [[1951년]] [[5월 30일]] ~ )는 [[로마 가톨릭교회]] 주교 출신의 전 [[파라과이]] [[파라과이의 대통령|대통령]]이다.
 
[[1977년]] 사제 서품을 받았으며, [[1994년]] 파라과이에서 가장 가난한 지방이 포함된 [[산페드로 (파라과이)|산페드로]] 교구의 주교로 임명되었다.<ref>[http://www.donga.com/fbin/output?n=200804220136 빈자의 아버지, 난국의 대통령 됐다] 동아일보 2008년 4월 22일자</ref> 주교로 재직하면서 빈민과 [[인디오]]의 권리를 옹호하고 토지 개혁을 주장하고 빈민가 구호 활동을 별여 '빈자의 아버지'로 알려지게 되었다.
 
[[2006년]] 수도 [[아순시온]]의 대규모 반정부 집회를 주도하면서 정치활동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으며, 빈민층의 인기를 받게 되면서 2008년 대통령 선거의 유력한 후보로 떠올랐다. 사회주의인터내셔널({{lang|en|Socialist International}}), 혁명 페브레리스타 당({{llang|es|Partido Revolucionario Febrerista}})과 관계가 있으며, 좌파계열 8개 정당과 여러 사회단체의 연합체인 변화를 위한 애국동맹({{llang|es|Alianza Patriótica por el Cambio}}/APC)의 대선 후보로 추대되어, [[2008년 4월]] 대선에 출마하여 41%의 득표율로 당선되었다.
 
한편 그는 정치활동에 전념하기 위하여, [[2005년]] 주교직을 사임하기로 하였고, [[2006년]] 정식으로 [[교황청]]에 주교 사임을 요청하였으나, [[교황청]]에서는 이를 승인하지는 않았고, 일단 사목활동을 할 수 있는 자격만 일시적으로 정지시켜 놓았다. 그러나 빈민층의 지지로 그가 대통령에 당선되어 이 문제로 교황청에서는 고심을 하였고,<ref>[http://www.hani.co.kr/arti/international/europe/284023.html 바티칸 ‘대통령 주교’ 해임 딜레마] 한겨레 2008년 4월 24일자</ref> 결국 [[2008년 7월]] 그의 사제직 사임을 수용하였다.<ref>{{언어고리언어링크|en}}[http://www.nytimes.com/2008/07/31/world/americas/31brief04.html?_r=1&oref=slogin Paraguay: Special Dispensation for President-Elect] The New York Times 2008년 7월 31일 </ref>
 
그의 당선으로 파라과이를 61년간이나 통치하던 우파 성향의 [[콜로라도 당 (파라과이)|콜로라도 당]] 정권은 막을 내리게 되었으며, 파라과이에도 좌파 성향의 정권이 들어서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급진적인 좌파 정책을 추진하지는 않겠다는 뜻을 내비치며 불안감을 잠재우려 했고, 당선인 신분으로 [[대한민국]]을 방문한 것도 이러한 노력의 일환인 것으로 분석되었다. 그 해 [[6월 1일]]부터 [[6월 5일]] 사이에 방한하여 [[이명박]] 대통령을 만나고 여러 산업시설을 둘러보았다. <ref>[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08060301072923111002 ‘해방신학 사제’ 대통령이 한국 배우러 왔다] 문화일보 2008년 6월 3일자</ref> 한편, [[2012년 5월]] [[여수 엑스포]]에 참석하기 위해 대한민국을 다시 방문하기도 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3&aid=0004523742 '파라과이 날' 국가원수 첫 참석] 뉴시스 2012년 5월 28일</ref>
 
취임에 앞서 실시된 여론 조사에서 90% 이상의 높은 지지율을 기록하여<ref>[http://www.yonhapnews.co.kr/international/2008/08/16/0607000000AKR20080816003400009.HTML 61년만의 정권교체 파라과이 향후 정국전망] 연합뉴스 2008년 8월 15일자</ref> 국민들의 그에 대한 기대는 매우 컸고, [[2008년]] [[8월 15일]] 정식으로 취임하였다.
 
그러나 취임 후 정파 대립과 경제난을 해결하지 못하여 인기가 떨어지기 시작했고, [[기독교]] [[성직자]]로 있으면서 여성 신도들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어 자녀까지 낳은 사실이 드러나면서 도덕적으로도 큰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01&aid=0005638664 파라과이 대통령 숨겨진 자식 또 있어] 연합뉴스 2012년 6월 6일</ref> 이런 가운데 2012년 6월 15일, 쿠루과티 지역에서 경찰이 빈농민에게 총을 발포해 농민 10명, 경찰 7명이 사망하고 80여 명이 부상당하는 사건이 벌어진 것에 대해 콜로라도 당이 국정운영 능력을 문제삼아 하야를 요구했다.<ref>[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20622MW144442391791 좌파 사제 출신 루고 대통령, 탄핵위기 왜?] 문화일보 2012년 6월 22일</ref> 콜로라도 당이 다수를 점한 의회에서는 그에 대한 탄핵을 추진, 6월 21일, 탄핵안이 하원을 통과한 데 이어 6월 22일, 상원도 통과하면서 그는 이에 대해 강하게 반발하면서도 사임을 발표하였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01&aid=0005658744 파라과이 대통령, 의회 탄핵으로 사임] 연합뉴스 2012년 6월 23일</ref> 대통령직은 보수 성향의 자유당 소속인 [[페데리코 프랑코]] 부통령이 승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