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스: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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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Indigofera tinctoria0.jpg|left|thumb|[[인디고페라 틴토리아]](''Indigofera Tinctoria'')|219x219픽셀]]
[[파일:MaRainey.jpg|섬네일|241x241픽셀|미국 블루스 싱어 마 레이니 (1886–1939), "블루스의 어머니"]]
[[File파일:Muddy Waters (blues musician)-cropped.jpg|섬네일|200px|참고로 "블루스의 아버지"는 [[머디 워터스]] (1913-1983)이다.]]
블루스라는 말이 노래에 처음 쓰이기 시작한 것은 1890 ~ 1900년대 초이지만, 어원에는 여러가지 설이 존재한다. 그 중 아프리카인의 장례 의식에서 유래되었다는 설과, 블루 데빌스(''{{lang|en|Blue Devils}}'')에서 유래되었다는 설이 있다. 현재 가장 신빙성이 있는 것은 블루 데빌스에서 유래되었다는 설이다.
 
아프리카인의 장례 의식 설은 남부 아프리카인들이 죽음을 맞아 의식을 치를 때 의복을 청색(블루)으로 물들여 입음으로써 자신들의 슬픔, 고통 등을 표현한 데서 블루스란 말이 유래하였다는 것이다. 남부 아프리카인들이 청색으로 물들일 때 사용하던 식물이 바로 '[[인디고페라 틴토리아]]'이다. 이 식물은 미국 남부 노예 농장에서 많이 자랐다. 이 풍습과 서부 아프리카 노예들이 목화를 재배할 때 부르던 [[노동요]]를 합쳐 우리가 알고 있는 블루스라 부르게 되었다는 설이다.
 
블루 데빌스는 우울과 슬픔을 의미하는 말이다. 이 말은 조지 콜먼(''{{lang|en|George Colman}}'')의 원맨 광대쇼 〈Blue Devils〉 (1798)에서 처음 사용되었는데,<ref name="a1">The "Trésor de la Langue Française informatisé" provides this etymology to the word blues and George Colman's farce as the first appearance of this term in the English language, see {{웹 인용|url=http://atilf.atilf.fr/dendien/scripts/fast.exe?mot=blues|title=Blues|publisher=Centre Nationale de Ressources Textuelles et Lixicales|accessdate=2010년 10월 15일|archiveurl=http://www.webcitation.org/5msLYsJNm|archivedate=2010-01-18|deadurl=no}} {{언어고리언어링크|fr}}</ref> 17세기 영국의 표현 중 "강렬한 시각적 환각을 동반한 심한 알코올 금단 증상''{{Lang|en|intense visual hallucinations that can accompany severe alcohol withdrawal}}''"이란 용어를 줄여 블루 데빌스라 했을 것으로 추측한다. 시간이 흘러 블루만 남아 블루스''(Blue {{취소선|Devil}}s)''가 되었고 불안 상태 혹은 우울한 상태를 뜻하는 말로 바뀌었다. 19세기 미국에선 블루스는 취하다란 속어로 쓰였다. 이러한 뜻을 가진 블루스와 음주''(drinking)''가 합쳐져서 '블루 법''{{Lang|en|Blue laws'}}''이라는 것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블루 법은 아직도 몇몇 미국의 주에서 시행되는 일요일 알코올 판매 금지 법이다. <ref>{{웹 인용|url=http://www.huffingtonpost.com/debra-devi/blues-music-history_b_2399330.html|제목=Why Is the Blues Called the 'Blues'?|성=Devi|이름=Debra|날짜=4 January 2013|웹사이트=Huffington Post|출판사=|확인날짜=2016.12.13}}</ref>
 
== 가사 ==
초기 전통 블루스 도입부 가사는 하나의 구절이 4번정도 반복되었던 것으로 본다. 이것은 20세기초까지의 형태이다. 이것을 AAB 패턴이라 칭하는데, 음악의 4마디를 먼저 구성하고, 그 다음 4마디는 앞 4마디를 반복하며, 다음 4마디는 끝나는 구절로 길게 만들었다.<ref>{{서적 인용|url=|제목=Ferris, p. 230.|성=|이름=|날짜=|출판사=|확인날짜=}}</ref> 〈Dallas Blues〉 (1912), 〈Saint Louis Blues〉 (1914)는 12마디 형식의 AAB 가사 구조를 취하고 있다. 가사들은 보통 리듬있게 말을 하여 패턴을 구성하고 그 위에 멜로디를 얹는 방식이었다.<ref>{{서적 인용|url=|제목=Handy, W. C. Father of the Blues: An Autobiography. p. 143. (No ISBN)|성=Arna Bontemps|이름=|날짜=1941|출판사=New York: Macmillan|확인날짜=}}</ref> 초기 블루스는 대개 경험에 입각한 이야기를 풀어 자유롭게 만들었다. [[아프리카계 미국인|아프리칸-아메리칸]] 싱어들은 그녀 혹은 그들의 사적인 고통 혹은 사회적 부조리함을 현실적으로 담아내었다. 그 중에선 실연, 당시 경찰관들의 잔인함, 백인들의 억압, 힘든 시기등이 있었다.<ref>{{서적 인용|url=|제목=Ewen, pp. 142–143|성=|이름=|날짜=|출판사=|확인날짜=}}</ref> 이렇듯, 가사들은 보통 아프리카-아메리칸의 사회에서의 경험, 사고등을 이야기했는데, 다음은 블라인드 레몬 제퍼슨의 〈Rising High Water Blues〉 (1927)에서 말해주는 [[1927년 미시시피 대홍수]]이다.
: "''Backwater rising, Southern peoples can't make no time''"
: "물이 차오르네, 남부 사람들은 시간을 못 맞출 것 같네"
: "''I said, backwater rising, Southern peoples can't make no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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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스에 리듬이 들어가면서 음악은 슬픈 기조에서 매우 밝고 힘찬 음악으로 변모해갔다. [[윌리 딕슨]]이란 작곡자가 1948년 유명한 시카고 블루스 연주자인 [[머디 워터스]]의 음반 《I Can't Be Satisfied》 (1948)을 듣고 한 말은 이 과정을 생생히 설명해준다. "주변에 블루스를 부르는 사람은 꽤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대부분 슬픈 블루스를 노래했다. 머디 워터스는 그 블루스에 원기를 불어넣었다. [[머디 워터스]]와 같은 아티스트에 의한 '활기찬 블루스'는 [[리듬 앤드 블루스|리듬 앤 블루스]]로 불리었다."<ref name="blues1" />
 
[[리듬 앤드 블루스|리듬 앤 블루스]]는 시간이 갈수록 더 템포가 빨라지게 되었고 사람들은 그 빠른 리듬 앤 블루스를 [[로큰롤]]로 부른다. 이것에 대해 [[리틀 리처드]]는
 
"네가 앉아서 로큰롤이 정말 무엇인지 생각해본다면, 질문을 (리듬 앤 블루스를 어떠한 빠르기로 치면 로큰롤이 되는지로) 바꾸어야 할것이다. 보통의 속도로 연주하면 블루스라 부를 것이고, 빠른 속도로 연주하면 로큰롤이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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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본산지로서의 자존심을 여지없이 짓밟힌 미국의 블루스 계는 폴 버터 필드(''{{lang|en|Paul Butterfield}}''), 블루스 프로젝트(''{{lang|en|Blues Project}}'') 등이 로커 빌리를 잠식하면서부터 블루스 록의 신화를 창조하기 시작한다. 물론 미국의 그것도 영국과 마찬가지로 자국의 로큰롤에 기초하여 성장해 나갔으며, 뿌리 깊은 블루스의 옹호 위에서 60년대 록 사운드를 주도해 나갔다.<ref name="blues2" /> 캘리포니아를 중심으로 모여든 [[히피]]들이 [[포크 음악]]에 관심을 가지면서 이른바 에시드 록이라는 약물과 밀접한 관련을 맺는 음악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곧 이어 제니스 조플린(''{{lang|en|Janis Joplin}}'') 이 등장하면서 포크에 국한 되어있던 히피들의 관심은 대번에 블루스 음악으로 확장되었고, [[비비 킹]], 루더 엘리슨(''{{lang|en|Luther Allison}}'')과 같이 재야에 숨어있던 블루스 맨들이 다시 전면에 나서기 시작했다. [[B.B. 킹|비비 킹]]의 전설적인 기타 테크닉은 그를 'King Of The Blues' 란 타이틀까지 얻게한다. 한편 [[존 리 후커]]와 [[머디 워터스]]는 계속 공연에 집중하면서, 전통적인 블루스에 깊이 빠져있는 새로운 아티스트를 찾는다. 미국 태생인 타지 마할과 같은 사람을 말이다. 훗날, [[존 리 후커]]는 자신의 블루스와 어린 백인 뮤지션을 미숙한 록과 섞어서 새로운 음악 스타일을 만들게된다. 바로 1971년 앨범 《Endless Boogie》다.
[[File파일:B.B. King 06.jpg|왼쪽|thumb|[[비비킹]]의 1985년 모습]]
시카고 블루스 스타일과는 달리, 거장 밴드들은 힘센 금관 악기를 사용했는데 슬라이드 기타와 하프(10홀 단음 하모니카) 대신, 색소폰, 트럼펫, 트럼본을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테네시 주|테네시]] 출신 바비 블루 밴드, [[B.B. 킹|비비 킹]]과 같은 블루스 맨은 [[리듬 앤드 블루스|R&B]] 장르와 블루스를 같이 하기 시작한다. 이 시기에 [[프레디 킹]]과 [[알버트 킹]]은 록, 소울 뮤지션 ([[에릭 클랩턴]], 부커 T & the MGs)과 자주 연주 했고, 이러한 장르 음악에 막대한 영향력을 끼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