훙커우 공원 사건: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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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화민국]] [[상하이]]에서 [[중국인]]들을 대상으로 채소 장사를 하던 윤봉길은 [[1931년]] 겨울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국무령]]인 [[김구]]를 찾아, 독립운동에 몸바칠 각오임을 호소해 그가 주도하는 [[한인애국단]]에 가입했다. [[김구]]는 [[1932년]] [[4월 29일]] [[상하이]]의 [[훙커우 공원]]에서 열리는 [[일본 천황]]의 생일연([[천장절]](天長節))과 [[상하이]] 점령 전승 기념 행사를 폭탄으로 공격할 계획을 세웠으며<ref name=autogenerated1>[http://www.donga.com/fbin/output?n=200704300153 donga.com[뉴스&#93;-“숭고한 정신, 모두에게 교훈”…윤봉길 의사 상하이 의거 75주년<!-- 봇이 붙인 제목 -->]</ref>, 협의 끝에 윤봉길이 폭탄을 투척하기로 결의하였다.<ref>이 때 윤봉길이 [[김구]]에게 훙커우 공원 폭탄 투척 직전에 “선생님의 시계보다 제 시계가 더 비싼 것인데, 저는 이제 몇 시간만 시간을 더 보면 되니 시계를 바꾸어 찹시다”라고 말했다는 이야기가 [[김구]]의 저서 《[[백범일지]]》에 실려 있다.</ref><ref>[[한겨레신문]] [[2007년]] [[4월 27일]]자 기사에 의하면, 윤봉길은 훙커우 공원 폭탄 투척을 이틀 앞둔 [[1932년]] 4월 27일 "나의 철권(鐵拳)으로 적(敵)을 즉각으로 부수려 한다"는 내용의 출사표를 수첩에 남겼다.[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205834.html]</ref>
 
당시 폭탄은 폭발물 전문가인 김웅에[[김홍일]]에 의해 폭탄 투척에 적합한 도시락 모양과 물통모양으로 제작되었는데, 이는 훙커우 공원에서 열리는 [[일본 천황]]의 생일연([[천장절]](天長節))과 [[상하이]] 점령 전승 기념 행사에서 식사는 제공되지 않으므로 일본측에서 이 행사에 참여하는 사람들에게 각자 도시락을 지참시켰기 때문에 윤봉길은 폭탄을 도시락과 물통으로 위장할 수 있었다. 물통은 투척용이고 도시락 폭탄은 자결용으로 제작되었다. 혹여 잡혀서 심문을 받지 않고 자결하기 위해서 도시락 모양의 폭탄도 만든 것이다. 폭탄은 두번의 실험을 거쳐 완성하였다. 당시 첫 번째 실험에서 폭탄이 터지지 않았기 때문에, 다시 실험을 한 것이다.
 
== 사건 과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