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보병사단 (대한민국):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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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써 제 7보병사단은 제 1, 9, 19연대 및 포병연대를 예하부대로 하여 1949년 6월 10일에 창설되었다. 1949년 9월 14일 지리산 공비토벌 작전에 투입되었으며 [[한국 전쟁]] 직전에는 [[의정부시|의정부]] 정면을 방어하는 임무를 수행하였다. [[한국 전쟁]] 초반 [[의정부 전투]]와 [[한강 전투|서울 방어 전투]]를 거치며 1950년 7월 5일 사실상 해편되었다가 8월 대구에서 3, 5, 8연대 외 당시 제 6보병 사단 소속 이었던 16포병대대로 재편되었다.
 
이후 [[영천 전투|영천지구전투]]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2개 사단을 섬멸하여 연합군의 반격작전을 위한 일대 전기를 마련하였고 이후 북진을 거듭, 1950년 10월 18일에는 평양에 최선두로 입성하여 조선인민군 사령부로 사용하던 [[김일성종합대학|김일성대학]] 옥상에 태극기를 게양하였다. 28차례의 주요전투에서 적 사살 2만3,000명, 포로 6,400여 명, 장비노획 2만9,000여 점의 전과를 올리기도 했으나, [[현리 전투]]에서 무장 해제에 가까운 패전을 겪기도 하였다. [[한국 전쟁]] 이후 1960년 4월부터 1976년 6월까지 45회에 걸친 대침투작전에 참가해 무장공비 31명을 사살하고, 3명을 생포하는 등 사단 창설 이래 대통령 부대표창 13회를 수상하기도 했다. 1963년 9월6일 현위치인 [[화천군]] 상서면 신대리에 주둔해 지금에 이르고 있다.
 
== 부대 편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