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호노리오 3세: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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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선출==
1216년 7월 18일 교황 인노첸시오 3세가 선종하기 이틀 전에 17명의 추기경이 새 교황을 선출하기 위해 [[페루자]]에 모였다. 이탈리아의 혼란스러운 상황과 타타르족의 무서운 기세, 교회 분열에 대한 우려로 추기경들은 교황을 선출하는데 있어 타협점을 모색하였다. 추기경들은 오스티아의 우골리노(훗날의 [[교황 그레고리오 9세]])와 귀도 파파레스키에게 새 교황을 지명할 권한을 주었다. 그들은 망설임 없이 첸시오 사벨리를 지명했으며, 첸시오 사벨리는 교황직을 받아들여 스스로 호노리오 3세라고 명명하였다. 그의 주교 서임식은 7월 24일 거행되었으며, 교황 대관식은 8월 31일 로마에서 거행되었다. 그리고 1216년 9월 3일 [[라테라노 대성전]]에서 로마 주교좌에 착좌하였다. 로마인들은 호노리오 3세의 선출을 크게 반겼다. 일단 호노리오 3세가 로마인이었던 데다가 상냥한 성격이의성격의 소유자였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그를 좋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전임 교황 인노첸시오 3세와 마찬가지로 호노리오 3세도 두 가지 큰 목표를 달성하는데 전념하였다. 그 중 하나는 [[제5차 십자군]]을 통한 [[거룩한 땅]]의 회복이고 두 번째는 교회의 영적 쇄신이었다. 하지만 그는 인노첸시오 3세와는 대조적으로 물리력과 엄격함보다는 친절과 관용으로 목적을 달성하고자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