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천 조씨: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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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사》에 의하면 시조 '''[[조지린]]'''(趙之遴)은 백주(白州)의 은천현(銀川縣) 출신으로 [[고려 목종]](穆宗) 때 이부시랑 지은대사(吏部侍郞 知銀臺事)로 임명되었고, 1011년(현종 2년)에 [[상서좌복야]](尙書左僕射)·참지정사(叅知政事)에 이르렀다. 시호는 공화(恭華)이다.<ref>[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671128 『고려사』 권94, 열전7]</ref>
 
20세기 편찬된 증보문헌비고에 의하면 [[조지린]]은 송 태조 조광윤(趙匡胤)의 적장자인 조덕소의 셋째 아들로 [[979년]] 황실의 난을 피해 고려에 와서 정착했다고 한다.<ref>[http://www.segye.com/content/html/2013/06/24/20130624024492.html 김성회의 뿌리를 찾아서 - 배천조씨·임천조씨], 세계일보, 2013년 6월 24일</ref> 그러나 [[신천 강씨]] 족보에는 [[후고구려]] [[태봉]] 장군 [[강선힐]]의 부인이 배천 조씨라고 되어돼있고 있는태봉은 것으로918년 보아망했다. [[고려]]시대 이전에도 배천 조씨가 있었던 것으로것인지 보이며,후대에 후대의쓰인 윤색으로신천 보인다강씨 족보가 윤색한 것인지 논란의 여지가 많다.
 
== 인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