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 요한: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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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사도 요한의 삶은 사랑이신 주님의 계명인 사랑을 따라 산 사도의 삶이다. 그래서 사도 요한이 기록한 요한복음에서는 다른 공관복음과 다르게 요한이 어떻게 주님을 따르게 되었는지 나오지 않는다. 또한 요한은 부활하신 주님의 무덤에 사도들 중 제일 먼저 달려 갔으나 오히려 수제자 베드로에게 먼저 들어가는 영광을 양보했고 또한 부활하신 주님을 디베랴 바닷가에서 처음에 홀로 알아본 자도 요한이었지만 그자는 역시 주님께 가장 먼저 가는 영광을 베드로에게 양보했다. 이는 주님께서 수제자로 베드로를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지정하셨기 때문이다. 즉 특히 주님으로부터 사랑받았던 요한은 주님의 십자가 고난 당시에 자신의 목숨을 걸고 사도들 중 홀로 주님의 곁을 지켰던 자이면서도 불구하고 오히려 자신의 영광보다 사랑이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수제자인 베드로에게 영광을 여러 번 양보했던 것이다.
 
또한 사도 요한의 삶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기묘하기까지 한 역사하심을 드러낸다. 즉 주님께서 체포되시던 날에 그분께서는 성경에서 목자를 치리니 양들이 흩어질 것이라고 하는 말씀이 성취되기 위하여 모든 제자들이 그분을 배반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실제로 베드로조차 주님을 그날 밤 3번 부인했다. 인류보다 강한 사탄의 무리가 그들을 흔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오히려 요한은 대제사장을 알았기 때문에 주님을 따라갈 수 있었으며 단지 주님의 제자라고 적극적으로 말하지 않음으로써 흩어진 양떼의 하나가 되었다. 또한 부활하신 주님으로부터 양떼를 치라고 명받았던 베드로는 자신의 운명을 듣고 나서 특히 주님께 사랑받았던 사도인 사도 요한의 운명에 대하여 물어보았는데 이때 주님은 내가 다시올때까지 저자가 살기를 바란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베드로 너와 무슨 상관이냐고 하시며 베드로 너는 나를 따르라고 하시는 말씀을 들었다. 그런데 실제로 요한은 사도 바울의 제자인 디모데가 목회하던 에베소지역을 목회하다가 AD91년에 즉위한 로마황제 도미시안이 자신에 대하여 명했던 우상숭배를 거부했다가 로마로 이송되어 독배를 마셨으나 아무 해가 없었고 끓는 기름솥에 던져졌으나 기적적으로 죽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당시 종교적 정치적 중범죄자가 유배되어 생지옥으로 여겨졌던 밧모 섬의 채석장에서 고령에 중노동을 하게되는 형벌을 받았는데 이때 요한계시록의 환상을 보게 되었으며 당시 눈이 잘 안보여 집사가 그것을 대신 기록해주었다고 한다. 그리고 18개월간 유배생활을 하다가 그 로마황제가 암살로 죽었기 때문에 AD96년에 다시 에베소지역으로 돌아와 요한복음과 요한서신과 요한계시록을 성도들에게 선물해줄 수 있었다. 실로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선물해주신 사랑의 주신 사도 요한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처럼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역사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이루시며 그분의 역사는 인류의 눈에는 기묘하기까지 하다.
 
서기 [[100년]]경에 94살의 나이에 사도들 중 유일하게 순교하지 않고 편안하게 임종을 맞았다고 전해 내려온다.{{출처|날짜=2014-03-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