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도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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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 방안 수립과 병권 장악: 정도전은 영의정을 지내지 않았는데 영의정을 지냈다고 잘못 서술 되 있어서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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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정 방안 수립과 병권 장악 =====
이후 [[조선 태조|태조]]의 [[칙명|교지]](敎旨)를 지어 새 왕조의 국정방향을 제시했고, 개국공신 1등으로 [[대광보국숭록대부]] 문하시랑찬성사 겸 판의흥삼군부사로 동판도평의사사사·판호조사·겸판상서사사·[[보문각]][[대학사]]·지[[경연]][[예문관]][[춘추관]]사 겸의흥친군위절제사를 겸직하여 정권과 병권을 모두 장악했다. 이후 [[영의정]]이 된다.
 
[[7월 20일]] 도평의사사사 겸 상서사사(尙瑞司事)가 되었다. [[7월 28일]] 좌명공신(佐命功臣)에 녹훈되고 문하시랑찬성사 의흥친군위 절제사(門下侍郞贊成事義興親軍衛節制使)에 임명된 뒤 봉화군(奉化君)에 봉군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