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인리히 1세: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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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자르 족 ====
919년 즉위 직후에 [[마자르 족]]이 [[동프랑크 왕국]]을 침공했다. 그런데 슈바벤 공작 부르크하르트 1세는 하인리히를 도와주는 것을 거절했다. 부르크하르트는 하인리히를 왕이 아닌 단지 공작 정도로 취급하였다. 하인리히는 부르크하르트가 죽은 뒤 그의 아들 대신 헤르만을 슈바벤의 공작으로 임명하였다.
 
921년 [[마자르 족]]이 왕국의 동부와 [[이탈리아]]를 약탈하였다. [[마자르 족]]의 상당한 병력에 대부분의 도시, 제후들은 패배했지만 일부 지역인 [[바이에른]]의 [[카란티아 후작령]]에서 에버하르트와 메란 백작(Count of Meran) 등은 [[마자르 족]]을 격파하는데 성공한다.
 
그러나 [[엘사스]](Elsass, 현재의 [[알사스]])의 백작 리우트프리트는 [[마자르 족]]과의 전투에서 크게 패배했고, [[마자르 족]]은 계속 동프랑크 왕국을 침공하였다.
 
924년 동남부에 있던 [[마자르 족]]이 독일 영토를 침략하자 하인리히는 일단 그들에게 공물을 바치겠다 약속하여 되돌려보냈다. 동시에 이전에 포로로 생포했던 마자르 장군들을 넘겨주었다. 동시에 하인리히는 국내에 성곽을 쌓아 도시들을 요새화시키고, 기병대 양성 및 기병대에 대한 훈련을 강화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