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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즉위하기 이전부터 동프랑크 왕국은 거의 무정부상태였다. [[콘라트 1세]]가 아들이 없어서 결국 동프랑크의 강력한 귀족 중 하나였던 하인리히를 후계자로 지명한 것이지만 슈바벤, 바이에른의 귀족들은 그에게 반발했고, 한동안 무정부상태였다. 그는 [[바이에른]] 등 일부 지역의 지지를 얻지 못했고 재위기간 내내 불안정했다. 즉위 직후 [[바이에른 공국]]과 전쟁을 벌였고, 하인리히는 자신이 주교를 임명할 능력이 있는 것을 들어 우위를 선점하려 했다. 바이에른 공작의 일부 권한을 인정하는 선에서 전쟁을 종료시켰지만 끝내 바이에른의 협력을 얻어내지 못했다. 결국 그는 무력으로 [[바이에른]]을 점령하였다.
 
하인리히는 통치권을 행사하기에는 너무 미약했고, 그는 스스로도 왕국을 왕국이 아닌 공국과 제후들의 연맹체 또는 연합체 정도로 인식했다. 그는 재위기간 중 귀족들과 갈등하였다. 하인리히는 자신의 후임자들이 시도한 것처럼, [[샤를마뉴 대제]]처럼 관료를 파견하여 지방, 제후들을 통제하고 제국을 관리하려 하는 것은 포기했다. 대신 [[프랑켄 공국]], [[슈바벤 공국]], [[바이에른 공국]] 등의 자치권과 자율성을 승인하였다.
 
=== 이민족과의 전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