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인리히 1세: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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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애 후반 ===
934년에는 [[데인 족]]의 공격을 받아 직접 출정하였다. [[데인 족]]은 바다 건너 [[프리슬란트]]의 해안가를 약탈했다. [[데인 족]]은 이어 [[밴드 족]]과 연합해 하인리히의 작센 영지까지 공격했다. 같은 해인 943년 하인리히는 [[덴마크]]를 침공, [[덴마크 왕]] [[크누트 1세]]와 교전하였고, [[슐레스비히]]에서 데인 족을 격파하는데 성공하고 슐레스비히를 독일의 영토에 편입시켰다. 동시에 그는 덴마크 족에게 [[그리스도교]]로 개종할 것을 약속받고 되돌아왔다.
 
그는 군주의 권한을 강화하려 하는 한편 독일 내 후작급 반대파 귀족들을 설득했다. 하인리히는 독일을 국가라기보다 여러 부족 공작, 제후들의 연맹체로 생각했다. 따라서 독일 전체에 대한 통치권은 포기하고 종주권을 획득하는 선에서 그쳤다. 프랑켄 지역을 복속시키면서도 자치권을 인정하고 명목상의 권리만 행사했을 뿐이고, [[슈바벤]]과 [[바이에른]]에게 자신을 지지할 것을 호소했다. 그러나 끝내 실패했고, 그는 919년 슈바벤 공작 부르하르트를 전쟁을 통해 굴복시켰지만 부르하르트에게 통치권과 민사행정권을 허락하고 종주권만을 인정받았다.
 
그는 자신의 왕국을 방어하는 한편 왕국 내에서의 권위를 얻기 위해 [[이탈리아]] [[로마]]에 가고 싶어했다. 하인리히는 [[로마]] 지역의 정국 불안을 이용하는 한편 그의 무력에 의존하여 로마로 갈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뇌졸중으로 실패하고 만다. 935년에는 [[하르츠]]로 사냥을 나갔다가 뇌졸중으로 되돌아왔다. 936년 초여름에 하인리히는 아들 [[오토 1세]]를 공동 통치자로 선언한다.

[[이탈리아]]로 갈 준비를 하던 도중 [[936년]] [[7월 2일]] 그는 [[튀링겐]]의 [[멤레벤]]의 한 수도원에서 [[뇌졸중]]으로 사망했다.
 
=== 사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