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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2년 아버지 오토의 뒤를 이어 작센공작이 되었고, [[918년]] 아들이 없던 [[콘라트 1세]]의 지명으로 왕위에 올랐다. 재임기간 중 [[로트링겐]]을 정벌하여 독일의 영토([[로렌]])에 편입시켰다. [[로렌]] 정벌 이후 반발을 무마하기 위해 [[로트링겐]]의 왕이었던 [[기셀베르트]]와 협상, 기셀베르트에게 딸 마틸다를 주고, 기셀베르트를 로렌의 공작으로 임명하는 대신 기셀베르트는 하인리히의 종주권을 인정하게 되었다. [[933년]] [[헝가리인]]들의 침략을 격퇴하고 황제로 추대되었으나 이는 그의 대에 한한 것이었다. 그는 [[동프랑크 왕국]] 영토 동부에 요새를 건설하였고, [[기병]]을 양성하여 군사력을 강화했다. 당시 왕권은 기초가 약했으며, 그는 재위 기간 중 동프랑크 내 귀족들의 반대와 반발에 직면하였다. 그러나 그는 전임자인 콘라트 1세와는 달리 왕국 내에서의 권위를 행사하는 것은 포기하였다. 그는 자신의 직할 영지인 [[작센]]의 발전에 힘쓴 것이 지방 제후들의 호감을 사기도 했다.
 
죽기 전 그는 자신의 아들 [[오토 1세]]를 공동 국왕으로 선포하여 왕위를 성공적으로 계승시켰다. 한편 본부인의 아들 [[탕크마르 (동프랑크)|탕크마르]]는 철저하게 배제시켰다. 그는 처음으로 [[독일국]] 또는 [[독일인]]의 왕이라는 명칭을 사용하였다. 그는 자신이 설립하였으며 첫 부인 마틸다가 묻힌 퀘들린 부르크 수도원에 안치되었다. 그는 두 딸을 통해 [[서프랑크]]의 카롤링거 왕 [[루이 4세]]의 외할아버지이자, [[위그 카페]]의 외할아버지가 된다.
 
== 생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