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인리히 1세: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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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작센]] [[공작]] [[오토 1세 (작센)|오토 1세]]의 아들이자 역시 작센 공작인 [[리우돌프 (작센)|리우돌프]]의 손자로, 하인리히 1세의 아들 오토 1세는 작센 공작으로는 오토 2세가 된다. 어머니 헤드비가는 [[프랑켄의 하인리히 1세]]와 [[프리울리의 헤드비가]]의 딸로, 어머니 헤드비가는 [[이탈리아]] [[프리울리]] [[후작]] [[에버하르트 1세 (프리울리)|에버하르트 1세]]와 프랑크의 기셀라의 딸이다. 어머니 헤드비가의 외할아버지는 [[프랑크 왕국]]의 [[루트비히 1세 (프랑크)|경건왕 루트비히 1세]]이고, 외삼촌은 [[카를 2세 (서프랑크)|대머리 카를 2세]]였다.
 
그의 아버지 [[작센]] [[공작]] [[오토 1세 (작센)|오토 1세일루트로스]]는 작센 공작인 리우돌프의 아들이었지만, 880년 2월 2일 자신의 형 브루노가 전투 중 사망하여 그 지위를 계승했다. 그의 할아버지 리우돌프 역시 작센의 공작이었다. 아버지 오토는 [[샤를마뉴 대제]]에게 저항한 작센 공작 비두킨트 이후 몇대를 지난 뒤 작센의 공작이 되었다. 일각에서는 비두킨트는 그의 그의 아버지 오토의 할아버지뻘 혹은 증조부뻘 되는 친척으로 추정되지만 하인리히와 공작 비두킨트가 정확히 촌수로 어떤 관계인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한편 그의하인리히 1세의 증조부 브룬하르트(Brunhart)는 [[프랑크 왕국]]의 그라프를 역임하였다.
 
이후 그의 집안은 동프랑크의 [[카롤링거 왕조]]와 인척 관계를 형성하였다. 하인리히 1세의 고모이자 작센 공작 [[리우돌프]]의 딸 리우트가르트는 874년 [[동프랑크]]의 왕 [[루트비히 3세 (동프랑크)|루트비히 청년왕]]의 왕비가 되었다가 루트비히 사후 882년 슈바벤 공작 부르하르트 1세와 재혼했고, 부르하르트 2세의 어머니가 된다. 그의 누이이자 아버지 오토의 딸인 오타는 다시 [[동프랑크]]의 왕이자 황제이며 [[루트비히 3세 (동프랑크)|루트비히 청년왕]]의 조카 [[아르눌프 폰 케른텐]]의 서자 [[츠벤티볼트]]와 결혼했지만 역시 츠벤티볼트 사후 [[메츠]] 백작 제라르(Gerhard I, count of Metz)와 재혼하였다.
 
[[906년]] 그는 [[작센]] [[백작]]이자 [[메르게부르크]] [[백작]] [[에르빈]](Erwin)의 딸 [[하테부르크 폰 메르게부르크]](Hatheburg von Merseburg)와 결혼하여 첫 아들 [[탕크마르 (동프랑크)|탕크마르]]<ref>938년 이복 동생 오토 1세에 대한 반란을 일으켰다가 실패하고 처형된다.</ref>를 얻었지만, 하테부르크가 첫 남편이 죽은 뒤 [[가톨릭]] 수녀가 되었다는 점 때문에 결혼의 합법성에 의문이 제기되었고, 결국 [[909년]] 결혼이 무효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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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9년]] 겨울, 하인리히 1세는 하테부르크와 헤어지고, 곧 [[베스트팔렌|베스트팔리아]] [[백작]] [[테오도리히 (작센)|테오도리히]] 또는 [[디트리히]]의 딸 [[마틸다 폰 링겔하임]](Matilda von Ringelheim)과 재혼하였다. 열성적인 가톨릭 신자였던 두 번째 부인 마틸다는 사후 [[로마 가톨릭]]으로부터 성인으로 시성되었다. 하인리히가 비두킨트와 어떤 관계인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의 두번째 아내 마틸다 폰 링겔하임은 비두킨트의 5대손이 된다. 마틸다와의 결혼으로 그는 [[작센]]의 서부지역에도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다. 마틸다는 그에게 [[오토 1세]], 브루노, [[하인리히 1세 (바이에른)|바이에른 백작 하인리히 1세]] 등의 아들과 게르베르가, 헤드비가(또는 헤드비히) 등의 딸을 낳았다. 게르베르가는 하인리히의 생전 로렌의 공작 기셀베르트에게 결혼 동맹으로 시집보냈다가, 기셀베르트 사후 아들 오토 1세가 다시 서프랑크의 루이 4세에게 정략결혼으로 결혼시킨다. 다른 딸 헤드비가는 서프랑크 왕국의 [[로베르 1세]]의 아들이자 유력 귀족 위그 르 그랑에게 시집갔는데, [[프랑스]] [[카페 왕조]]의 첫 번째 왕 [[위그 카페]]가 하인리히 1세의 외손자가 된다. 마틸다는 [[퀘들린 부르크 수도원]](Quedlinburg Abbey)을 설립하는데 여기에 훗날 마틸다와 하인리히 본인이 매장된다.
 
아버지 오토는 동프랑크 왕국의 유력 귀족으로 [[911년]] [[유아왕 루트비히]]가 자녀 없이 사망하자, 동프랑크의 귀족들에 의해 왕으로 추대되었다. 그러나 아버지 오토는 강력한 경쟁자였던 [[프랑켄]] 공작 [[콘라트 1세|콘라트]]에게 자리를 양보하였다. 오히려 아버지 오토는 908년 무렵부터 [[튀링겐]] 지역으로 영향력을 확보하려 하였다.
 
==== 작센 공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