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하일 8세 팔레올로고스: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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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후=테오도라
|이전 황제=[[요한네스 4세]]
|다음 황제=[[안드로니쿠스안드로니코스 2세 팔레올로고스]]
|목록=[[비잔티움 황제 연대표|비잔티움 황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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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
미카일은미하일은 콘스탄티노폴리스를 수복하여 제국의 다시 부활시킨 황제이지만 사실상 그 부분에서는 별로 한일이 없다. 그의 업적은 군사적인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외교적인 것에 있었다. 거의 모든 유럽 세력이 제국에 반기를 들었을 때는 그는 외교술을 발휘해 제국을 구해 내었다. 그러나 이러한 외교에 사용한 동서 교회통합 정책으로 비잔티움 주민들의 심각한 반발을 불러왔고 이는 이후 제국의 역사에 계속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또한 그의 외교정책은 서유럽에 집중되어 있었으므로 투르크가 [[소아시아]] 전역을 점령하고 몽골의 확장에 대해 대비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었다. 재정역시 콘스탄티노플 복구와 그의 외교노선에 따른 낭비, 상비군 유지에 따른 과도한 부담으로 상당히 악화되었으며, 이것은 후계자인 안드로니쿠스2세 시대의 소아시아 상실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끼쳤다.
 
== 가족관계 ==
[[1253년]], 미카일은미하일은 테오도라([[요한네스 3세]]의 손조카)와 결혼했다. 자녀는 아래와 같다.
* 마누엘 팔리올로고스([[1254년]]–[[1259년]])
* [[안드로니쿠스 2세|안드로니쿠스 팔라이올로고스]] ([[1259년]]–[[1332년]]):제위계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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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임후임
|전임자=[[라틴제국의 보두앵 2세]]
|후임자=[[안드로니쿠스안드로니코스 2세 팔레올로고스]]
|직책='''[[비잔티움 황제 연대표#팔라이올로고스팔레올로고스 왕조 (콘스탄티노폴리스 회복, 1259-1453)|비잔티움 황제]]'''
|임기=[[1261년]] - [[1282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