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숙 (1917년 12월):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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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일성과 결혼 ====
[[파일:김일성 가족.jpg|thumb|right|200px250px|남편 김일성, 아들 김정일과 함께]]
김정숙은 [[1940년]] [[9월]]에 [[김일성]]과 결혼생활을결혼 생활을 시작했고, 그 해 [[10월]]에 김일성과 함께 [[소련]]으로 넘어갔다. [[1941년]] [[2월 16일]]에 [[소비에트 연방]] [[뱌츠코예]]([[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는 [[백두산 밀영]]이라고 주장함)에서 첫째 김유라([[김정일]])를 낳았고,<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3&aid=0004256396 KBS 특별기획 김정일 3부작 '김정일의 모든 것을 찾아서'] 뉴시스, 2011.12.22</ref> [[1944년]]에는 둘째 김슈라([[김만일]])를 낳았다.
 
=== 해방 직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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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후 ===
[[파일:Kim Jong-il in North Korean propaganda (6075332268).jpg|thumb|right|200px250px|김일성, 김정일, 김정숙을 소재로 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그림]]
[[파일:Pyongyang Revolutionary Martyrs Cemetery - statue 7.jpg|thumb|right|200px250px|평양 대성산혁명열사릉에 전시된 김정숙의 흉상]]
묘지는 [[대성산혁명열사릉]]에 안장되어 있다.<ref>{{뉴스 인용|url=http://www.prometheus.co.kr/articles/120/20060813/20060813190300.html|제목=북한의 열사릉, 그 상징과 폭력 : 혁명열사릉과 애국열사릉|출판사=프로메테우스|저자=차문석|날짜=2006-08-13|확인일자=2008-06-28}}</ref> 김정숙은 해방 후 공식적인 직책을 맡은 적은 없으나, 사후 장군으로 추존되어 '백두여장군', '김정숙 여장군님' 등의 존칭으로 불리게 되었다. [[양강도]]에는 그의 이름을 딴 [[김정숙군]]과 [[김정숙읍]]이 신설되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는 그의 항일 투쟁과 해방 이후의 새 조국 건설 사업에 남긴 업적이 높다며 《3대장군》중 한명으로 받들었다. [[함경북도]] [[회령시]]와 [[양강도]] [[김정숙군]] [[김정숙읍]] 등지에 동상이 있고, 혁명열사릉에 흉상이 있으며, [[조선인민군]] 해군간부를 양성하는 초급 대학 중 그의 이름을 딴 [[김정숙해군대학]]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