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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0년]] [[마오리족]]은 자신들을 보호해주는 대가로 뉴질랜드의 통치권을 영국에 양도하는 [[와이탕이 조약]]을 체결하였다. 그 이후부터 뉴질랜드회사, 오타고협회, 캔터베리협회 등을 통하여 각지에서 이민자가 건너오기 시작하였다. [[1880년대]] 초 냉동선이 개발되자 오지에서도 농목업이 발전하였고, [[1852년]]에는 뉴질랜드 헌법에 따라 뉴질랜드 정부가 들어서게 되었다.
 
그러나 영국의 식민화가 진행됨에 따라서 토지강탈과 관련하여 마오리족과 영국 간에 분쟁이 생겼고, 1843~1870년 사이에는 두 차례에 걸쳐 마오리 전쟁이 일어났다. 이에 영국은 마오리족에 대해 유화정책을 펴는 한편, 식민지 회의에 마오리족 대표를 참가시키는 등 온건파 회유에 노력하여, [[1870년]]부터는 인종분쟁이 약해지고 마오리족의 영국화가 시작되었다. 이처럼 마오리족과의 공존관계 설정을 통해 갈등을 해결하고자 한 노력은 다른 식민지에서는 좀처럼 찾아볼 수 없는 해법이였는데 이는 본토와의 거리가 엄청난데다가 특별한 지하자원등의 메리트가 없기 때문인 영향이 컸다. 그 후 뉴질랜드는 개척이 진전됨에 따라 [[1907년]] 영국의 자치국이 되었다가 [[1947년]] 11월 25일 독립하였다. 제1·2차 세계대전 때에는 영국 본국과 함께 연합국의 일원이 되어 참전·활약하였다.
 
[[1949년]] 7월 한국을 정식 승인하였으며, [[1950년]] [[한국전쟁]] 때에는 총 5,350명이 영국 연방으로 참전하였다. 대한민국과는 [[1962년]] 외교관계가 수립되었다. 또한 1964~72년까지 [[베트남 전쟁]]에 군대를 파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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