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천 (1888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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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12월에 간행된 김종범(金鍾範), 김동운(金東雲) 공저, 『해방전후(解放前後)의 조선진상(朝鮮眞相)』에도 북한 김일성은 김광서(金光瑞, 金擎天) 장군의 명의를 도용 중이라 한다고 했다.<ref>김종범(金鍾範), 김동운(金東雲) 공저, 『해방전후(解放前後)의 조선진상(朝鮮眞相)』, (서울, 朝鮮政經硏究社, 1945. 12. 25); 복간본 『해방전후의 조선진상』 : 제2집 독립운동과 정당 급(及) 인물 (서울, 돌베개, 1983) p.190.</ref>
 
그의 일본육사 3년 후배인 [[김준원 (1888년)|김준원(金埈元, 1888~1969)]]은 1920년대1918~1922년간 [[일본의 일본군의시베리아 연해주개입|일본의 시베리아 출병(シベリア出兵)]] 때 일본군 중위로 연해주에 파견되었던 적이시베리아에 있는데파견되었는데, 당시 김경천이 김일성 장군으로 알려져 있었다는 증언을 남겼다.<ref>[http://news.joins.com/article/1409615 김광서가 즉 김일성 장군이다.] 중앙일보 1975.06.20 종합 6면</ref>
 
[[윤치영|윤치영(尹致暎, 1898~1996)]]도 북한 김일성은 가짜이고, 진짜 김일성은 일본 육사 나온 김광서(金光瑞, 1888-1942)라고 하였다.<ref name="yuncy">[http://www.bigkinds.or.kr/BEFORE_90_IMG/1981/09/25/19810925HKM06.pdf 윤치영 (尹致暎) : 나의 이력서 (55) 북괴의 김일성은 가짜...진짜 김일성은 일육사 나와] (한국일보 1981年 9月 25日字 6면) 한국언론진흥재단 BIG KINDS</br/>《동산회고록(東山回顧錄) : 윤치영(尹致映)의 20세기(世紀)》 (삼성출판사, 1991년 3월)</ref> 김광서는 일본 육사 선배로 친하게 지내던 그의 형 [[윤치성|윤치성(尹致晟, 1875~1936)]]을 자주 찾아왔기 때문에 윤치영도 어릴 때 그를 자주 보았다. 윤치성은 김광서가 독립운동하러 조선을 탈출할 때 재정 지원도 하였다고 한다. 김광서의 부친 [http://db.history.go.kr/id/im_101_03235 김정우(金鼎禹, 1857~1908)]는 육군 공병 참령(工兵 參領)으로, 윤치영의 백부인 군부대신(軍部大臣) [[윤웅렬|윤웅렬(尹雄烈, 1840~1911)]]의 부관(副官)을 지냈다고 하므로 집안끼리도 잘 아는 사이였기 때문에 윤치영의 증언은 믿을만한 것이다. 윤웅렬의 아들이자 윤치영의 4촌형인 [[윤치호|윤치호(尹致昊, 1864~1945)]]의 영문 일기 1920년 1월 22일자에는 김광서(金光瑞) 군이 몇 달 전 북부지역으로 떠났다고 하면서 아래와 같이 적었다.<ref>[http://db.history.go.kr/id/sa_031r_0010_0010_0220 국역 윤치호 영문 일기7 > 1920년(경신년) > 1월 > 22일 《목요일》 흐리고 추움.] (한국사료총서 번역서7)<br>[http://db.history.go.kr/id/sa_031_0010_0010_0220 尹致昊日記 八 > 1920년 > JANUARY, 1920 > 22nd. Thursday. Cloudy. Chilly.] (한국사료총서 제19집)</re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