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찬 (1916년)"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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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군의 정치적 중립'을 강조하여 독재정권에 반대 하였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03347701 한-미 '참군인' 우정 담긴 앨범 공개)</ref>
 
1937년 6월 일본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만주·남양군도 등지에서 복무하다가복무하였고 1942년 12월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자 뉴기니(New Guinea)에 파견 되었다. 그 이후 일본 패망, 1945년 광복 이후 뉴기니에서 미군에게 억류되어 귀국있다가 1946년 3년간8월 낭인생활을한국으로 하였다돌아왔다. 그러나 [[1948년]]부터 [[대한민국 국군]]에 진출한 인사들의 거듭된 영입 요청으로 육군 대령으로 특채되어 군생활을 시작하였다.
 
[[여순 사건]]의 유탄을 맞고 [[박정희]]가 숙청될 위기에 처했을 때 그를 구명하였다. [[1950년]]의 [[한국 전쟁]]에 참전하였으며, 휴전 후에는 [[이승만]]의 부당한 지시에 저항하였다. [[대한민국 제2공화국|제2공화국]] 때에는 [[박정희]]의 쿠데타 기도를 파악하여 [[국무총리]] [[장면]]에게 보고했는데, 그는 당시 [[박정희]]의 쿠데타 계획을 눈치챈 몇 안되는 인물이었다.
1942년 도쿄의 육군포공학교(陸軍砲工學校)에 있다가 12월 태평양전쟁이 시작되자 뉴기니(New Guinea)에 파견되어 독립공병 제4중대에 소속되었고, 1943년 7월부터는 일본군 제17군 남해지대 소속의 독립공병 제15연대에서 복무했다. 같은 해 12월 육군 공병 소좌로 진급해 1944년부터 독립공병 제15연대장 대리로 복무했다.
 
그러나 [[8월]] 일본 패전, 1945년 광복 이후 뉴기니에서 미군에게 억류되어 있다가 1946년 8월 한국으로 돌아왔다.
 
광복 직전인 [[1945년]] 4월 사망한 아버지 [[이규원 (1890년)|이규원]]의 [[조선귀족|자작]] 작위는 습작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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