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레스와프 2세 시초드리: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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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애 ==
볼레스와프는 [[카지미에시 1세]]의 장남으로 태어나 [[1058년]] 그를 계승하였다. 한동안 혼란에 빠진 폴란드를 카지미에슈 1세가 정리하였지만, 여전히 폴란드의 영토는 할아버지 [[볼레스와프 1세 흐로브리]] 이래로 줄고 있었는데 볼레스와프는 이를 다시 회복하고자 하였다. 그의 가장 가까운 적은 [[보헤미아 왕국]]이었다. 폴란드는 [[실롱스크]] 지방을 영유하는 대가로 [[보헤미아]]에 공물을 바치고 있었는데, 볼레스와프는 이를 거부하고 전쟁을 일으켰다. 그러나 첫 번째 대 보헤미아 전쟁은 성공적이지 못하였고 보헤미아 왕 [[브라티슬라프 2세]]에게 딸인 스바타바를 시집보내는 것으로 마무리 지어졌다. 한편, 볼레스와프의 지원으로 그의 동맹인 [[벨러 1세]]가 [[헝가리]]의 왕위에 올랐다.
 
볼레스와프의 동방정책은 보다 성공적이었다. [[1069년]] [[키예프]] 공으로 [[이자슬라프 1세]]를 옹립하는 데 성공하여 [[러시아]]에서의 폴란드의 영향력을 넓히는 데 성공하였고 보헤미아 등의 다른 적을 러시아의 협력 하에 견제할 수 있었다. 그러나 [[브라티슬라프 2세]]는 [[신성 로마 제국]]에 도움을 청했지만, 당시 황제 [[하인리히 4세]]는 [[서임권 분쟁]]으로 [[교황 그레고리오 7세]]와 분쟁중이었고 [[카노사의 굴욕]] 사건이 터지는 바람에 전쟁이 발발하지는 않았다. 교황청과의 관계가 좋았음에도 불구하고 볼레스와프는 하인리히 4세와의 분쟁에서는 이득이 없었다. [[1076년]] [[12월 26일]] 볼레스와프는 교황청으로부터 폴란드의 왕으로 인정받아 공식적으로 왕위에 올랐다. [[1078년]] 이지아슬라프 1세가 사망함에 따라 볼레스와프는 두 번째로 키예프 공위 계승에 개입하였는데, 이때 폴란드의 귀족들이 반란을 일으켰다. 볼레스와프는 이를 잔인하게 진압하였는데 그 과정에서 볼레스와프는 귀족들의 편을 들었던 [[크라쿠프]] 주교 [[슈체파누프의 스타니스와프]]를 죽였다. 이 사건으로 인하여 볼레스와프는 공분의 대상이 되었고 결국 [[1079년]] 폴란드를 떠나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