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천리 (일제강점기의 잡지):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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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뜻|삼천리 (1950년 잡지)|1930년대의 잡지 삼천리|1950년대 이후의 잡지 삼천리}}
'''삼천리'''(三千里)란, [[1929년]] [[6월]] [[일제 강점기]] [[조선]] [[경성부]]에서 발행된 취미, 시사 중심의 월간 종합 잡지를 말한다. [[김동환]], [[김동인]], [[이광수]], [[염상섭]] [[정지용]], [[나혜석]], [[김일엽]], [[장면]] 등이 필진으로 참여하였다.
 
취미 중심의 오락지이면서도 저속하지 않아 당시 개벽사에서 발행하던 《별건곤(別乾坤)》과 함께 이름난 대중잡지로 유행하였다. 정치, 사회, 취미, 역사, 시사 등 각 분야에 대한 다양한 글을 수록, 소개하였고 시중의 은어와 비속어, 여성 운동, 조선의 독립운동에 대해서도 폭넓게 소개하는 등 호의적이었다. [[1941년]] 폐간되었다가 이듬해 [[3월]] 복간, [[1942년]] [[5월]] 대동아로 이름을 바꾸어 간행하였으나 그해 [[7월]] 폐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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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요 ==
=== 창간 ===
[[1929년]] [[6월 12일]] 발간된 종합지로 편집 겸 발행인은 [[김동환]](金東煥), 발행은 삼천리사(三千里社)이다. A5판, 50쪽, 창간호는 B5판 70쪽이었으나 월간, 격주간 등으로 B4판,A5판 등으로 계속 간행되었다. 취미 중심의 잡지였으나 저급한 취미로 타락하지는 않았으며, 주로 고십난(가십 난)에 치중하여 호기심을 끌 만한 특종(特種)을 잘 포착하여 지면에 곧 반영시켰다.
 
발행 겸 편집인은 김동환으로 [[이광수]], [[김동인]] 등은 고정 필진이자 편집을 일부 맡아보았다. 창간호에는 [[한용운]], [[이광수]], [[이은상]](李殷相)‧박팔양(朴八陽)‧[[심훈]](沈薰)의 시와 [[염상섭]](廉想涉)의 소설, 그리고 [[안재홍]](安在鴻), [[홍명희]], [[신흥우]], [[문일평]](文一平) 등의 논문들도 실려 있다. 그러나 자유로운 주제를 다루어 [[이광수]] 등의 자유연애론자와 [[정지용]], [[장면]] 등의 가톨릭계 인사들과 개신교계 인사들 등 다양한 주제와 다양한 필진이 폭넓게 참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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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타 ==
한국 현대 문학에 끼친 공로도 적지 않아서 문단의 중견작가들이 쓴 [[문예강좌]]를 비롯 여러 명이 집필하여 소설과 작품을 쓰는 방법 등에 대한 간단한 소개들, [[김동인]]의 '춘원연구 (春園硏究)', 여러 중견작가들의 작품연대표 등은 문학사에 회자화되기도 한다.
 
[[일제 강점기]] 당시 조선인의 독립운동에 대해서도 호감을 보이기도 했다. 당시 사회로서는 저속하다고 여겨지는 성 담론과 시중의 은어, 비속어 등도 거침없이 소개하였기에 [[조선총독부]] 학무국과 검열당국의 통제를 다소 덜 받았다. 일제의 가혹한 검열 밑에서 수차 원고압수와 삭제의 곤욕, 압수, 정간조치 등을 당하면서 점차 현실과 타협하여 1940년 이후에는 친일적인 논설들도 수록하였다.
 
== 같이보기같이 보기 ==
* [[김동환]]
* [[삼천리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