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영화: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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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 ==
{{참고|한국의 영화|일제강점기 이전의 역사}}
=== 광복 이후 ===
일제강점기 후반부에는 검열과 동원으로 영화 제작이 어려웠다. 광복이 되자 영화인들은 거의 맨주먹으로 다시금 재기하기에 안간힘을 썼다. 이 당시의 영화는 광복의 감격을 표현한 작품이 대부분이었다. [[최인규 (영화 감독)|최인규]] 감독이 [[전창근 (영화 감독)|전창근]]을 주연으로 해서 만든 《자유만세》, [[윤봉춘]] 감독의 《안중근 사기(安重根史記)》, [[이규환 (영화 감독)|이규환]] 감독의 《똘똘이의 모험》을 비롯하여 《3·1혁명기》·《해방된 내 고향》 등이 1946년에 제작되었으며, 다음해에도 민족의 고난과 독립투쟁을 말하는 《윤봉길 의사》·《불멸의 밀사》·《민족의 절규》 등 많은 작품을 내놓았다.그러나 한국의 영화가 그 예술적인 면에서 크게 진전을 본 것은 1960년 이후의 일이었다. 초창기로부터 해방 당시까지 그 의욕은 왕성했지만 예술적인 차원에서는 아직도 미숙했었다. 다른 예술과 마찬가지로 영화인들은 민족의 고뇌와 분노를 간접적으로 표현하는 데 영화를 하나의 수단으로 사용한 예가 오히려 많았다고 주장되기도 한다.<ref>'한국의 영화', 《글로벌 세계 대백과》</re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