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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내전|내전]]이 진행되는 동안 그와 그의 형인 호세 사바테 요파르트(José Sabaté Llopart)<ref>https://libcom.org/history/articles/1910-1949-jose-sabate-llopart</ref>는 “CNT-FAI”의 “젊은 독수리 칼럼(Young Eagles Column)”으로서 아라곤 전선에서 싸웠다. 이 사단이 강제로 스탈린주의자 정치장교의 통제하에 맡겨졌을 때, 사바테와 두명의 동지는 정치장교를 죽이고 바르셀로나로 도망간다. 그곳에서 그들은 FAI를 대신하여 스탈린주의자의 당국에 대항한 많은 임무를 수행했다. 결과적으로 사바테는 공산주의자들에게 체포되어 수감되었지만, 그의 아내의 도움으로 그와 동지들은 감옥에서 탈출한다. 전쟁이 공화파의 패배로 끝났을 때 26 사단([[부에나벤투라 두루티|두루티]] 칼럼)은 국경을 넘어 프랑스로 향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비시 프랑스|비시정권]]과 나치에 대항한 레지스탕스가 된다.<ref>https://libcom.org/history/articles/spanish-resistance-in-france-1939</ref>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사바테는 스페인으로 돌아와 프랑코 정권에 대항한 무장투쟁을 시작한다.<ref>https://libcom.org/history/articles/armed-resistance-to-franco</ref> 그가 최초로 행한 행동은 1945년 8월 20일에 투옥된 2명의 동지들을 탈출 시킨 것이였다. 사바테와 그의 동지들은 게릴라 활동의 자금을 충당하기 위해 [[수용적 아나키즘|기업과 은행을 털기도 했다.]] 1949년 3월 2일, 이들은 팔랑헤의 우두머리 두명을 암살한다. 그는 당국에 의해서 공공의 적이자 악몽으로 묘사되었다. 이후 계속해서 투쟁을 이어가는 동안 그의 많은 동지들이 죽고, 그의 형인 호세도 1949년에 사망하고, 다른 형제인 마누엘도 1950년에 사망하지만<ref>https://libcom.org/history/articles/1927-1950-manuel-sabate-llopart</ref>, 그는 경찰의 포위망에서 도망치며 계속 투쟁을 벌였다. 1959년 12월 30일 그는 마지막으로 프랑스-스페인 국경을 넘었고, 1960년 1월 5일 산 셀로니(Sant Celoni)에서 파시스트의 준군사 조직인 소마텐(Somaten)과 경찰의 기습공격을 당해 사망한다. 이때 그의 동지들인 안토니오 미라클 기타르트(Antonio Miracle Guitart, 29), 로헬리오 마드리갈 토리에스( Rogelio Madrigal Tories, 27), 프란시스코 코네사 알카라즈(Francisco Conesa Alcaraz, 39), 마르틴 루이즈 몬토야(Martin Ruiz Montoya, 20)도 함께 사망한다. 사베테는 공격자체에서 탈축할탈출할 수는 있었지만, 중상을 입었기 때문에 몇시간 뒤에 사망했다. 이때 그의 나이는 45세였다.
 
==자유의 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