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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경향을 대성하여 유명론을 실념론과 대비되는 하나의 큰 학파로 형성시킨 사람은 [[오컴의 윌리엄|윌리암 오컴]]이었다. 그는 영국인 특유의 [[경험주의]]를 바탕으로 그 무렵 [[옥스퍼드]]에 일어난 과학적 연구를 신학·철학에 응용하여 새로운 경험과학의 길을 열었다. 그에 의하면 참된 명제는 직접 명료하게 증명되지 않으면 안 된다. 그에 반하여 추상적 인식은 그 대상의 존재 여부를 확인하지 못한다. 확인되는 것은 특수한 개체의 인식뿐이다. 따라서 보편은 개념 또는 소리에 지나지 않고 실재하는 것은 개체뿐이다. 이것은 [[로저 베이컨]]의 원리가 철학적으로 전개된 결과였다.
 
그를 계승한 것은 [[애덤 워덤]], [[미르쿠르의 존]] 등이다. 그중에도 [[오트르쿠르의 니콜라우스]]는 모순율(矛盾律)만이 확실한 기본원칙이며 5관의 판단인 경험에 의해 인식되는 것 이외에는 긍정할 수 없다고 하였다. 자연에 관해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질료와 형상의 이론을 버리고 아톰설을 택했다. [[뷔리당]]은 오컴주의를 신봉하여 자연 연구에 종사했고 타성의 원리를 발견하였다. 이러한 의미에서 그는 근대 역학(力學)의 개조이다. 최후의 스콜라 학자 가브리엘 비엘은 유명론을 쉽게 해설하여 [[멜란히톤]] 및 [[루터]]에게 영향을 미쳤다. 로버트 D. 누슨(Robert D. Kundsen)은 루터의 두 왕국사상에서 유명론의 영향이 나타난다고 한다. <ref>로버트 D. 너드센(Robert D. Kundsen), "문화적 세력으로서의 칼빈주의", <칼빈이 서양에 끼친 영향>(크리스챤다이제스트2001크리스챤다이제스트: 2001), 20-21</ref>
 
이와 같이 하여 유명론은 스콜라학의 벽을 뚫고 근대과학·근대사상의 길을 준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