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성고등공업학교: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Mouthum (토론 | 기여)
편집 요약 없음
Mouthum (토론 | 기여)
편집 요약 없음
18번째 줄:
 
== 경성고등공업학교 ==
경성고등공업학교는 [[대한제국]] 때 성립된 공업전습소가 승격되어 설립된 관립 전문학교였다. [[일본]]의 직공학교 수준에 불과했던 공업전습소가 경성고등공업학교로 발전함에 따라 진정한 고등공업교육이 시작되었으며, 경성고등공업학교는 [[일제 강점기]]와대일본제국 해방 직후시절과 [[대한민국]]의 공업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경성고등공업학교는 1940년대까지 [[조선]]의 유일한 고등공업기관이었기 때문에 다른 전문학교에 비해 특수한 학교로 여겨졌다. 조선교육령 개정 이전에는 조선인을 전체정원에서 2/3가량 선발한다는 내규가 있어 조선인의 입학 경쟁이 치열하지 않았지만, 교육령 개정 이후 그러한 내규가 폐지되어 입시 경쟁률은 13:1에서 27:1까지 폭증하게 되었고 조선인의 입학이 매우 어려워졌다. 이 때문에 [[1935년]]의 입시에서는 토목과에 조선인 학생이 단 1명만 합격하기도 했다. 당시 교육계에서는 [[경성고등상업학교]](경성고상)의 조선인 입학난과 함께 경성고공과 경성고상의 입시제도를 조선인에게 유리하게 시정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으나, 경성고등공업학교와 [[조선총독부]] 학무국에서 받아들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