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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자감: 8품 이상의 아들이 아닌 8품 이하의 아들이라고 보는 것이 합당하다.(박찬수,고려시대의 향교,67쪽 참조))
=== 국자감 ===
{{본문|국자감}}
[[국자감 (고려)|국자감]]은 [[고려]]의 대표적인 관학이자 당시 최고학부였다. 국자감의 설립 배경은 크게 두 가지로 여겨진다. 먼저, [[유교]] 군주의 지상과제인 [[교화]]를 수행하기 위한 것이었다. 교화란 국민들을 유교적 이념에 따라 살아가도록 만드는 것으로서, 유교사회에서 학교는 교화의 근원으로 여겨짐에 따라 유교 국가에서 학교를 설립하여 운영하는 것은 당위였다. 다음으로는음으로는 학교가 [[과거 제도]]를 활성화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당시 왕들의 생각 때문이었다. 과거 제도는 유능한 인재선발을 휘한 것이었을 뿐만 아니라 왕권 안정을 위한 장치로 인식되었는데 만일 학교가 없었다면 학생들은 공부할 기회 자체가 없게 되어 과거 제도에 대해 무관심하게 될 것이고 이렇게 되면 과 제도는 유지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인하여 고려의 왕들은 학교의 설립과 운영에 끊임 없이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국자감 (고려)|국자감]]의 특징으로서는 먼저 묘학제(廟學制)가 있다. 국자감에는 [[공자]]를 위시한 [[유교]] 성현들을 제사 지내기 위한 장소인 문묘와 학생들에게 강의를 하기 위한 학당이 별도로 있었다는 것이다. 이는 문묘가 독립되어 있지 않고 학당 안에 부설되어 있었던 [[통일신라]]의 [[국학]] 과는 다른 점이었다. 이런 문묘배향과 학술기관의 융합 기능은 [[조선]]의 [[성균관]]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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