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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 [[생각]]의 기본 요소를 이미 설정하고 [[고대]]를 [[문화]] 발전이 최고조에 달한 시기로 간주하면서 [[중세]]를 인간의 창조성이 [[기독교]]에 기생한 사람들로 말미암아 철저히 무시된 암흑기라고 판단하여 [[고전]] [[학문]]의 부흥을 이용해 [[문명]]을 다시 일으키고 [[사회]]를 개선할 수 있다고 [[프란체스코 페트라르카]]가 한 주장은 당시 인간을 중시하고 인간의 능력과 성품과 현재 소망과 행복을 소중히 간주하는 태도를 좇는 사람들이 흉중에 품은 거대한 소신이기도 했는데 이 사람들은 간단한 라틴 학문의 부흥에 그치지 않고 인간의 유식하고 [[창조]]하는 힘을 다시 일으키려는 [[믿음|신념]]에 차 있었다.
 
당시 [[레오나르도 브루니]]는 자기 시대의 학문의 부활을 있는 그대로 열거하여 서술했고 16세기에 [[조르조 바사리]]는 『[[이탈리아|이태리]]의 가장 뛰어난 [[화가]], [[조각가]], [[건축가]]의 생애』에서 [[고대]] [[세계]]가 몰락하고서 쇠퇴한 [[미술]]이 [[조토 디 본도네|지오토 디 본도네]] 덕분에 소생했다고 하여 rinascita를<ref>의미: 蘇生(소생), 回生(회생), 復活(부활), 再生(재생)</ref> 쓴다. [[볼테르|프랑수아 마리 아루에]]는 14세기에서 15세기 [[이탈리아|이태리]]에 학예가 부활한 사실을 재지적했고 [[쥘 미슐레]]는 16세기 [[유럽]]을 [[문화]]상 신시대라고 하여 용어 르네상스를 최초 사용했으나 르네상스를 [[인간]]의 본성 해방과 [[인간]]의 재발견, 이치에 부합하는 사유와 생활 태도를 타개한 [[근대]] [[문화]]의 선구라고 간주한 해석을 정초(定礎)한 [[야코프 크리스토프 부르크하르트]]는 1860년에 출간한 《[[이탈리아|이태리]]의 르네상스 [[문화]]》에서 시대로서 르네상스라는 판단 방식이 정착하여 오늘까지 하는 연구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야코프 크리스토프 부르크하르트]]는 르네상스와 [[중세]]를 완벽한 대립으로 파악하고 [[근세]]는 [[중세]]가 아닌 [[고대]]에서 시작했다고 주장했으며, [[중세]]를 지극히 정체된 암흑기라고 가혹하게 비평했으나 이후에 한 여러 연구는 이것에 이의를 제기하기도 하여 르네상스의 맹아를 [[고대]]에서 구하지 말고 [[중세]]에서 찾아야 하고 르네상스를 [[근대]]의 특징이 될 만한 경향이나 성질이 있다는 판단은 오류라는 주장도 대두된다. 15세기의 르네상스는 [[종교 개혁가]]들에게 큰 영향을 주어서 교회를 개혁하는 [[종교 개혁가들의 신학]]을 형성하는데 원동력이 되었다.
 
== 어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