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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미국 정찰위성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영변 원자력 연구소]]의 플루토늄 재처리 시설을 확인하고, 1993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핵확산금지조약(NPT)을 탈퇴하면서 북미간 군사적 충돌 위기가 고조되었다. 지미 카터 미국 전대통령이 개인자격으로 방북<ref>http://100.naver.com/100.nhn?docid=150532</ref>해 북미간 제네바기본합의서가 극적으로 타결되었다.
 
== 제네바 합의 의 공개및 비공개 전문 == <ref name=iaea-INFCIRC457>{{cite뉴스 news인용 |url=http://www.iaea.org/Publications/Documents/Infcircs/Others/infcirc457.pdf |title=Agreed Framework of 21 October 1994 Between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and the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 |id=INFCIRC/457 |publisher=IAEA |date=2 November 1994 |archiveurl=https://web.archive.org/web/20031217175315/http://www.iaea.org/Publications/Documents/Infcircs/Others/infcirc457.pdf |archivedate=17 December 2003}}</ref>
* '''『미국과 북한 간의 `합의의 틀'과 관련하여 쌍방은 이 합의의 틀에 담겨진 사항들의 이행에 참고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은 양해사항과 정의에 합의했다. '''
* '''1. [[경수로]] 발전소 사업은 각기 약 1,000㎽/E의 발전용량을 갖는 2기의 기존 [[원자력]] 발전소를 대체하는 [[경수로]] 발전소로 구성된다. 제2호 원자로의 준공은 제1호 원자로의 준공 후 약 1년 내지 2년 안에 이루어지는 것을 양해한다. '''
* 미국의 경수로 발전소 지원을 위한 자금 지원의 [[미국 의회]] 불허등 약속 불이행에 대해서, 북한은 5년 이후 핵무기를 개발하였다. 미국은 북한에 대한 신뢰가 없었고 이에 6자 회담을 고수하였으나 6자 회담 참가국들 중 [[중국]]과 [[러시아]]는 북한을 통해 미국을 견제하려는 의도로 회담을 이용하여 실질적인 합의는 이루어지지 않은채 회담을 위한 회담만 지속되었다.
* 미국은 북한 핵발전소의 대체 에너지인 중유의 북한 지원은 [[미국 의회]]의 반대에 따라서, 지속적인 지연이 발생하여 북한에 심각한 경제난 중 전력난이 야기 되었으며, 한국은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대북 식량 지원등이 있었지만, 북한의 1990년 고난의 행군 기간동안 수만명의 북한 주민이 아사 당하는 처절한 고통을 받겠되었다. 제네바 합의의 핵심 당사자인 미국의 [[경수로]] 자금및 건설 지연이 되면서, 북한은 비밀리에 핵무기 개발을 이후 시작 하였으며, 결국 양측의 신뢰구축은 실패했다. 2002년 미국은 제네바 합의를 비판하던 [[공화당]]의 [[부시]]행정부 가 들어서면서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되면서 북한에 대한 제재 일변도의 정책이 자리잡게 되었다. 제네바 합의는 북한이 주장하는 자체 적인 방어를 위한 핵무기와 관련된 합의 이며, 북한이 이런 핵무기를 개발하지 않아도 되도록 하기 위하며 북한과 미국간의 대체 에너지 및 공식적인 북미간의 [[평화 협정]] 추진을 합의였다. 즉 제네바 합의내용중 실제적인 이행 사항으로 , 한미상호방위조약 및 한미간 군사훈련 중단등의 주장은 실제로 제네바 합의 내용에 명시적으로 기재 된것 이었다. <ref name=iaea-INFCIRC457>{{cite뉴스 news인용 |url=http://www.iaea.org/Publications/Documents/Infcircs/Others/infcirc457.pdf |title=Agreed Framework of 21 October 1994 Between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and the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 |id=INFCIRC/457 |publisher=IAEA |date=2 November 1994 |archiveurl=https://web.archive.org/web/20031217175315/http://www.iaea.org/Publications/Documents/Infcircs/Others/infcirc457.pdf |archivedate=17 December 2003}}</ref>
 
이와 같은 상황을 둘러싸고 언론과 북한문제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제네바합의 붕괴의 책임이 어느 쪽에 있는지에 대해 다양한 의견이 나오고 있다. 제네바합의 붕괴에 대한 북한과 미국의 외교적 공방과 관찰자들의 논란 속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몇가지 사항은, 이 문제의 책임 소재를 양국 정부 차원으로 파악하고, 제네바 합의를 비판하는 [[미국 공화당]]주도로, 핵발전소의 대체 에너지인 [[경수로]] 발전소 자금 지원의 [[미국 의회]] 불허 이후, 북한의 핵개발 시인 파문, 그리고 [[미국 공화당]] 부시 행정부 등장으로 잡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이와 같은 지적에는 제네바합의 자체가 붕괴의 씨앗을 배태하고 있었다는 점을 전제하고 있으나, 그것은 제네바합의의 의의를 과소평가하고 합의 붕괴를 사후적으로 합리화하는 논리라는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ref>통일문제연구, 제15권1호(2003년 상반기), pp. 1-26</re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