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신왕: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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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서기]]》에서는 아신이 태어난 날 밤 기이한 광채가 사방을 뒤덮었다고 한다. [[침류왕]]이 죽었을 때, 그의 나이가 어려 숙부인 [[백제 진사왕|진사왕]]이 대신 즉위하였으나 [[392년]] [[진사왕]]이 죽자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의하면 아버지 [[침류왕]]이 죽을 때 아신왕의 나이가 어렸으므로 숙부인 [[진사왕]]이 대신 왕위를 계승했다 한다. 그러나 [[일본서기]]에 의하면 아신이 군사를 일으켜 [[진사왕]]을 제거하고 즉위했다 한다.
 
즉위한 직후인 [[393년]] 아신왕은 [[고구려]]에게 빼앗긴 영토를 회복하기 위해 장군 [[진무 (백제)|진무]](眞武)를 좌장으로 삼고 [[군사]]를 맡겼다. [[진무 (백제)|진무]]는 1만의 병력으로 [[고구려]]가 점령한 [[관미성]]을 공격하였으나 [[고구려]]군이 굳게 지키고 보급이 여의치 않아 퇴각하였다. [[394년]], [[395년]]에도 수곡성과 패수(浿水) 등의 국경지대에서 [[고구려]]군과 싸웠으나 번번이 패배하였으며 이후에도 [[군사]]를 정비하고 쌍현성을 쌓는 등 전시 체제를 계속 유지하였다. [[398년]]에 [[고구려]] 정벌을 시도하였으나 천문이 불길하다는 이유로 중지하였고 이듬해에도 정벌을 위해 [[군사]]를 징발하여, 계속되는 군역에 고단한 백성들이 [[신라]]로 도망하는 경우가 많아 인구가 감소하였다고 한다. 399년에는 왜와 가야와 백제가 신라를 공격하지만 [[광개토대왕]]에게 패한다. 광개토대왕릉비에 쓰여있다.
 
6년([[397년]]) 여름 5월, 임금이 [[왜|왜국]](倭國)과 우호 관계를 맺고 태자 [[전지왕|전지]](腆支)를 볼모로 보냈다. 가을 7월, 한수 남쪽에서 대대적으로 군대를 사열하였다. <ref>六年 夏五月 王與倭國結好 以太子腆支爲質 秋七月 大閱於漢水之南, 삼국사기 제25권 백제본기 제3(三國史記 卷第二十五 百濟本紀 第三) </ref> [[402년]]에도 사신을 보내고 이듬해 답사를 받는 등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였다. [[403년]]에는 [[신라]]를 공격하였으나 패배하였고, [[404년]]에는 왜군과 연합해 고구려의 대방지역을 공격하였으나, 그 때마다 패해 달아났다. 왜군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은 것은 고구려를 공격하기 위한 청병사와 비슷한 것이었다.<ref>十二年 春二月 倭國使者至 王迎勞之 特厚 秋七月 遣兵侵新羅邊境, 삼국사기 제25권 백제본기 제3(三國史記 卷第二十五 百濟本紀 第三) </ref> [[405년]]에 사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