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하리시 마헤쉬 요기: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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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비틀즈의 세계에 나타난 것은 1967년의 일이었다. [[조지 해리슨]]의 아내 [[패티 보이드]]는 런던 캑스턴 홀에서 열린 마하라시의 강연에 참석했다. 비틀즈는 그녀의 열성과 런던 지하철역에 붙은 일련의 광고 전단에 설득당해 1967년 8월 24일 런던 힐튼 호텔에서 열린 그의 강연에 참석했다. "우리는 정신적으로 확장되고 싶었어요. 아니면 적어도 우리가 관심 있는 모든 것들에 대해 어느 정도 체계를 갖추고 싶었죠." [[폴 매카트니]]가 말한다. 그는 또 비틀즈가 7실링 6펜스를 내고 마하리시와 이야기할 수 있는 티켓을 끊었다고 말했다. "우리는 모두 티켓을 사서 맨 앞줄에 앉았습니다. 무대 위는 꽃들로 가득했어요. 이어 그가 나와서 책상다리를 하고 앉았죠. 무척 멋있어 보였어요. 상당히 말을 잘했고 곧 (명상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습니다."{{sfn|브라이언|2014|p=218}}
 
당시 언론은 마하리시에게 "낄낄 웃는 구루"라는 별명을 붙였다. 그는 뱅커 사범대학에서 열린 자신이 주최한 명상 강좌에 비틀즈를 초청했다. 1967년 8월 25일 금요일 그곳에 도착한 비틀즈가 매니저 [[브라이언 엡스타인]]에게 북웨일스로 와서 자신들과 함께하자고 하자 브라이언은 8월의 공휴일인 월요일 이후 합류하겠노라고 답했다. 레논의 말에 따르면 뱅커에서의 체류는 "끝내줬"다. 그는 덧붙였다. "마하리시는 우리가 메세지를메시지를 전한다면 널리 퍼질 거라고 생각했어요." 이어 그는 결제 방식에 대해 설명했다. "끝내준 일이 하나 더 있었습니다. 참가비는 각자의 1주일치 급료였어요. 지금까지 들어본 것 중에 가장 공평한 일 같았죠. 그렇게 딱 한 번만 내면 됐어요." 비극적이게도 비틀즈는 갑작스레 뱅거를 떠나야 했다. 이들은 엡스타인이 8월 27일 런던에 있는 자신의 아파트에서 사망한 채 발견됐다는 소식을 들었다.{{sfn|브라이언|2014|p=218}}
 
6개월 뒤인 1968년 2월 이들은 리시케시의 아슈람에서 석 달간 머물기로 하고 인도를 여행하는 것으로 마하리시에게 의지를 재차 보여주었다. 그러나 [[링고 스타]]가 그곳을 떠난 지 열흘 뒤 매카트니도 약 한 달만에 그곳을 떠났다. 그에 반해 [[존 레논]]과 해리슨은 어떤 소문에 동요해 결국 떠날 마음을 먹을 때까지 그곳에 남아 있었다. 마하리시가 여배우 [[미아 패로]]에게 부적절한 행동을 했다는 추문이었다. 나중에 해리슨 본인은 그때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을 확신했다고 말했다. "역사상 일어나지도 않은 일이 일어난 것처럼 돼버린 근거 없는 헛소문입니다. 진짜 아무 일도 없었어요." 비틀즈는 마하리시에게 거리를 두었다. 환멸을 느낀 레논이 말했다. "우리는 여전히 명상을 믿지만 마하리시와 그의 일행을 믿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공개적으로 실수를 저질렀어요." 매카트니가 덧붙였다. "우리는 마하리시에게 그보다 뭔가 더 특별한 것이 있다고 믿었었습니다. 하지만 그도 한 인간일 뿐이에요. 한동안 아닌 줄 알았지만 말이죠."{{sfn|브라이언|2014|p=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