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운령 진흥왕 순수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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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운령 진흥왕 순수비는 [[16세기]] 말에 발견되어 [[17세기]] 초 [[한백겸]]이 《동국지리지》에 [[고려]] [[윤관]]의 비로 소개하였으나, [[1929년]]에 [[최남선]]이 함경남도 이원군 마운령 [[만덕산]] 산중에 파묻혀 있던 것을 찾아낸 후 [[진흥왕 순수비]]라는 사실을 고증하였다. 지금은 [[함흥시]] 사포구역 소나무동에 있는 [[함흥본궁]] 뜰안에 옮겨놓았다.
비석은 [[화강석]]으로 네모나게 다듬어서 만들었는데 비몸돌의 높이는 1.36m, 너비는
비문에는 [[진흥왕]]의 업적과, 변방을 돌아보는 목적, 그리고 비를 세우게 된 연유 등이 적혀 있고, 마지막 부분에는 왕을 따라갔던 사람들의 출신과 벼슬, 이름이 새겨져 있다. 이 비는 지금 있는 [[진흥왕 순수비]] 가운데서 비문이 제일 많이 남아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신라]] 제24대 왕인 진흥왕이 [[568년]] 8월에 이곳을 돌아보고 간 것을 기념하여 세운 이 비는 당시의 [[역사]]와 [[서예]], [[이두]]문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ref name="마운령 진흥왕 순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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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함경남도]] 이원군 동면 운시산(雲施山, 속칭 萬德山) 봉우리 아래에 있었다. 지금은 북한 함경남도 함흥시 사포구역 소나무동에 위치한 함흥 본궁(本宮) 본관(本館)에 보관되어 있다. 일찍부터 학자들이 주목해 한백겸(韓百謙)·김정희(金正喜) 등이 언급했으나 뚜렷한 근거를 제시하지는 못했고, 다만 현지에 살던 강필동(姜必東)이 약간의 기록을 남겼을 뿐이었다.
그러던 중 1929년 9월에 전적(典籍)조사 일로 현지에 출장나가 있던 최남선(崔南善)이 현지 유지들의 협력을 얻어 본격적으로 조사해 학계에 소개하면서부터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비의 재질은 화강암으로 높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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