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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룽은 원래 계룡(鶏龍)으로 불렸던 곳이다. 17세기 초에 스페인인들이 이 곳으로 진출한 이후부터 네덜란드인, [[정성공]] 일파의 거점이기도 했다. [[청나라]]가 [[정씨왕국]]을 격파한 다음에는 청나라의 영토로 편입되었다. 청나라가 통치할 시기인 [[1861년]], 대외적으로 개항이 시작했다. 게다가 [[1885년]]에는 [[타이완 성]]이 설치되었고, 지명도 계룡에서 지룽으로 바뀌었다.
 
이처럼 지룽은 [[일본의일본 타이완 통치 시대|일본의제국]]의 식민 통치 시대([[대만일치시기]]) 이전부터 대외 무역의 거점이었지만, 항만의 수심이 얕았고 게다가 대형선이 정박하기에는 부족한 것도 많았다. 그리고 근대적인 항구로서는 한계가 있었다. 거기서 일본이 [[1895년]]부터 타이완을 통치하기 시작하면서 4년 뒤인 [[1899년]]부터 준설 공사와 방파제 건설을 빨리 진행시켜서 1만 톤 급의 선박이 정박 가능하게 공사를 진행했다. 같은 시대에 지룽은 [[타이완 남북 철도]]의 북쪽 기점으로 여겨지면서 그 중요성이 높아졌다. 사실상, 지룽은 일본 해군이 위치한 군항이자 요새였다.
 
지룽은 타이완 북쪽이라는 지형으로 인해서 [[일본]]과도 연결되었다. [[일본]]에서 이주한 일본인도 많았고 도시화도 빨리 진행되었다. [[1925년]]에 시가 되었는데 그 당시의 인구는 7만 명으로 4분의 1이 일본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