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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2년]] 어머니가 [[이탈리아]]의 [[왕]] [[이탈리아의 우고|우고]]와 세 번째로 결혼할 때 요한 11세는 그 혼인미사를 집전하였다. 932년경 마로치아의 또 다른 아들이자 요한 11세의 동생 [[스폴레토의 알베리크 2세]]가 주도한 반란이 일어나자 마로치아는 요한 11세와 함께 포로가 되어 [[산탄젤로 성]]에 투옥되었다. 이후 요한 11세에게 남은 권한이라고는 순전히 성직자 본연의 영적인 문제 수행이 유일했다. 그 밖에 사법권 전체는 온전히 알베리크 2세가 행사하였다. 그가 행사한 사법권은 세속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교회 문제까지 포함되었다.
 
요한 11세는 알베리크 2세의 압력에 굴복하여, 935년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 테오필락토스|테오필락토스]]에게 [[팔리움]]을 하사했으며, 933년에는 [[랭스]] 대주교 [[랭스의 아르탈드|아르탈드]]에게 팔리움을 하사했다. 일부 가톨릭 자료에서는 요한 11세가 베드로좌에사도좌에 앉은 것을 교회 역사적으로 볼 때, 수치스러운 사건으로 간주하기도 하기도 한다. 하지만 훗날 강력한 교회 쇄신의 선두주자였던 [[클뤼니 수도원]]에 많은 특전을 부여한 사람도 요한 11세였다.
 
== 각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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