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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의 뒤를 이어 즉위한 [[조선 정조|정조]]는 영조의 탕평책을 계승하였다. 그러나 당쟁의 표면적 안정에 중점을 두고 능력에 관계없이 양쪽을 고르게 등용한 영조와는 달리, 정조는 국정의 철학으로 명절과 의리를 제시하고 자신의 국정 운영에 부합하는 세력(남인의 청남계, 노론의 청명당계 등)을 중용하였다<ref>한국사특강, 185쪽.</ref>. 영조의 탕평책과 대비하여 정조의 탕평책은 준론탕평(峻論蕩平, 옳고 그름을 명백히 가리는 탕평책)이라 불린다<ref>한영우, 391쪽.</ref>. 그러나 붕당 간의 당쟁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정조의 정책에 찬성하는 [[시파]](時派)와 반대하는 [[벽파]](僻派)로 새로운 당파를 형성하여 당쟁을 계속하였다.
 
=== 시파 대 벽파 ===
=== 시파 대 벽파사도세자의사도세자의 죽음을 에워싸고 시파와 벽파 간의 당쟁이 일어난다. 장헌세자의 죽음 이후 그의 죽음을 동정하는 시파와 그의 죽음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벽파가 생겨났다. [[홍봉한]] 일파는 시파에 속하고 [[김귀주]](金龜柱) 일파는 벽파에 속하는데, 이로써 노론의 분열은 물론 소론·남인도 주로 시파에 속하는 등 당쟁의 양상은 더욱 복잡해졌다. 그 후 정조가 즉위하자 자연히 시파를 가까이했으며, 순조가 즉위했을 때는 영조의 계비인 김씨가 섭정을 함에 따라 벽파가 정권을 잡았다. [[1801년]](순조 1년)에 일어난 [[신서파]]와 [[공서파]]의 대립이었던 [[신유사옥]]도 이 시파·벽파의 대립이 밑바탕에 깔려 있었다. ===
 
=== 붕당정치의 종말 ===
정조가 죽고 [[조선 순조|순조]] 대신 수렴청정하던 대왕대비 [[정순왕후 (조선 영조)|정순왕후 김씨]]는 국내 [[로마 가톨릭]] 신자 탄압을 빌미로 시파를 모두 숙청하였다. 정순왕후의 수렴청정이 끝난 후에는 [[김조순]]이 정권을 잡게 되고 그의 딸을 왕비로 삼으면서 [[안동 김씨]]의 [[세도 정치]]가 시작되었다. 그와 동시에 붕당은 정치 세력으로서의 의미를 상실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