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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6년부터 남성동성애자인권모임 친구사이에서 인권운동을 시작, [[양지용]], [[정욜]] 등과 함께 대학생동성애자인권연합([[동성애자인권연대]]의 전신)의 창립을 주도하였다. 이후 [[1998년]] [[대학생동성애자인권연합]]이 확대 개편된 [[동성애자인권연대]]의 창립, 발족에 참여하고 대표로 선출되었다. 동인련 활동과 동시에 그는 인권운동사랑방 서준식 대표의 소개로 만난 이석태, 진선미 변호사와 더불어 동성애 왜곡 국정교과서 수정신청을 주도하였고, 2000년 9월 커밍아웃으로 인해 MBC 뽀뽀뽀 등에서 [[홍석천]]이 해고되고 방송과 영화 등에서 퇴출되자 서울퀴어영화제 서동진 조직위원장(현 계원예술대 교수)과 동성애잡지 한채윤 편집장(초대 서울 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장) 함께 홍석천의 커밍아웃을 지지하는 모임을 결성하여 해고의 부당함과 더불어 동성애자 차별에 대한 부당함을 호소하였다. 당시 이석태, 강금실 변호사, 국회의원 이미경, 정범구, 임종인, 인권운동사랑방 서준식 대표, 민가협 임기란 상임의장, 한국일부 전 편집국장이자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남영진 지부장,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우석균 사무국장,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김정렬 소장, 한국여성단체연합 남윤인순 사무총장(19대 국회의원), 한국성폭력상담소 최영애 소장(국가인권위원회 초대 사무총장), 조희연, 조효제, 곽노현 교수(전 서울시 교육감) 등이 홍석천의 커밍아웃을 지지하는 모임에 동참하였다. 2000년 성공회대학교 NGO대학원에 진학하여 조희연(서울시 교육감 예비후보), 조효제, 박경서(대한민국 초대 유엔인권대사, 국가인권위원회 초대상임위원), 신영복, 김동춘, 전순옥(19대 국회의원), 곽노현 교수(국가인권위원회 전 사무총장, 서울시 전 교육감) 한홍구(대한민국사 저자), 박성준 등에게 정책, 인권, 노동, 사회, 유엔 및 국제기구와 국제인권법, 평화학을 사사받았다. 1999년-2001년까지 올바른국가인권기구실현을위한공동대책위원회 공동대표로 서준식 대표, 조용환 변호사, 최영애 소장, 곽노현 교수, 윤기원 변호사, 송두환 변호사, 최영도 변호사, 정강자 대표 등과 함께 활동하며 독립적인 국가인권위원회 설립과 더불어 차별금지 사유에 성적지향과 병력(病歷 medical history)를 포함시키는 등의 역할을 하였고, 2003년 [[하리수]] 예명분쟁 사건을 진선미 변호사와 함께 대사회적으로 알렸으며, 법적소송에도 참여하여 승소하였다.
 
== '''<big>병역거부</big>''' ==
그는 대한민국 군대에서 동성애자를 정신병으로 취급하고 동성애자들을 처벌하는 조항 폐지, 수정을 촉구하였다. 2004년-2005년에는 군형법 92조 계간조항(동성애 성행위를 처벌하는 법조항)과 동성애를 정신질환으로 분류하는 징병신처검사에 저항하여 병역을 거부하였다. Amnesty International 은 임태훈의 구금을 비난하는 성명을 발표하였고, 그의 석방을 촉구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심 법원은 보석을 기각하였고, 재판장 최종두는 법이 보장하는 최후진술을 중단시키고 교도관을 동원하여 임태훈을 법정에서 끌어냈다. 당시 변호인 진선미는 피고인과의 협의할 시간을 요청하였으나 최종두 재판장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징역 1년 6개월형이 선고되었고, 1년 4개월 동안 [[서울구치소]]에 수감되었다가 풀려났다. Amnesty International 은 구금된 임태훈을 양심수로 선정하고 그의 석방을 촉구하는 서명운동에 돌입하였다. 임태훈은 구금된 기간동안 전세계에서 약 5000 여통의 편지를 받았다. 가석방 중이던 2005년 광복절에 특별사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