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정사 (평창군)"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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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정사 석조보살좌상'''(月精寺 石造菩薩坐像)은 보물 제139호로 지정되어 있다. [[고려시대]]의 석조보살좌상로, 높이가 1.8m이며 [[강릉 한송사지 석조보살좌상]], [[강릉 신복사지 석조보살좌상]]과 더불어 특이하고 아름다운 불상 조각의 형식을 띠고 있다. 월정사 경내의 [[평창 월정사 팔각 구층석탑]]을 향해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모습이다.
 
=== 월정사부도군월정사 부도군 ===
{{본문|평창 월정사 부도군}}
'''월정사부도군'''(月精寺浮屠群)은 문화재자료 제42호로 지정되어 있다. 월정사에서 상원사(上院寺)로 가는 길의 약 700m 지점 전나무 숲속에 위치하고 있는데 대부분이 석종형(石鍾型)의 부도(浮屠)이나 그 중에는 2중 기단과 옥개를 갖춘 원탑형(圓塔型)의 부도도 있다. 운공성관(雲空性觀)·금성당(金聖堂) 등 도합 22기(基)인데 크기는 높이 1∼2m내외로 조선중기 이후의 부도인 것으로 추정된다.
 
=== 월정사 북대 고운암 목조석가여래좌상 및 복장유물 ===
=== 월정사북대고운암목조석가여래좌상및복장유물 ===
{{본문|월정사북대고운암목조석가여래좌상및복장유물}}
'''월정사북대고운암목조석가여래좌상및복장유물'''(月精寺北臺孤雲庵木造釋迦如來坐像및腹藏遺物)은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131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 불상은 나무로 만든 석가불좌상으로, 1710년(숙종 36) 북대(北臺) 고운암(孤雲庵)에서 광습(廣習) 등 3인에 의해 조성되었음을 알 수 있는 발원문과 후령통 등의 유물이 복장에서 함께 발견되었다. 현재 월정사 성보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 월정사육수관음상월정사 육수관음상 ===
{{본문|월정사육수관음상}}
'''월정사육수관음상'''(月精寺六手觀音像)은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53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 불상은 몸에 손이 왼쪽과 오른쪽 어깨에 각각 3개씩 모두 6개가 달려있어 6수관음보살로 불리는데 금동으로 주조되어 있다. 머리에 삼면화관(三面花冠)을 썼는데 정면에는 화불(化佛)좌상이 있고 그 안에서 육계가 솟아 있는 조선시대의 보살상이다.
 
=== 월정사적멸보궁월정사 적멸보궁 ===
{{본문|평창 월정사 적멸보궁}}
'''월정사적멸보궁'''(月精寺寂滅寶宮)은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28호이다. 신라 선덕여왕(재위 632∼647) 때 자장보살이 당나라에 가서 문수보살의 계시를 받고 돌아와 세웠다는 전설이 있는 곳으로 우리나라 5대 적멸보궁 중 하나이다.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의 1층 건물이며, 지붕은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으로 화려한 팔작지붕이다. 앞면 가운데 칸에는 두 짝의 판자로 만든 문을 달았고, 양쪽 칸에는 아래에는 판자로 만든 벽을 대고 위에는 띠살창을 하고 있어 특이하다.
 
=== 평창 월정사 중대 사자암 목조비로자나불좌상 ===
{{본문|평창 월정사 중대 사자암 목조비로자나불좌상}}
'''평창 월정사 중대 사자암 목조비로자나불좌상'''(平昌 月精寺 中臺 獅子庵 木造毘盧遮那佛坐像)은 강원도 유형문화제 제157호이다. 이 비로자나불좌상은 조각수법이 정교할 뿐만 아니라, 불상의 제작연대(1894년) 및 작자를 명확히 알려주는 복장유물을 동반한 조선 말기의 불상으로 불교미술사적으로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월정사성보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 평창 월정사 남대 지장암 목조지장삼존불감 ===
{{본문|평창 월정사 남대 지장암 목조지장삼존불감}}
'''평창 월정사 남대 지장암 목조지장삼존불감'''(平昌 月精寺 南臺 地藏庵 木造地藏三尊佛龕)은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158호이다. 이 불감은 17~18세기 전형적인 불상조각의 특징을 잘 나타내 주며 그 예가 많지 않은 지장삼존불감일 뿐만 아니라, 조선후기 불교조각 양식을 잘 갖추고 있어 불교미술사적으로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 평창 월정사 북대 고운암 목조미륵보살좌상 ===
{{본문|평창 월정사 북대 고운암 목조미륵보살좌상}}
'''평창 월정사 북대 고운암 목조미륵보살좌상'''(平昌 月精寺 北臺 孤雲庵 木造彌勒菩薩坐像)은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159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 미륵보살좌상은 복장유물이 완전하게 보관되어 있어 1710년이라는 정확한 제작연대와 제작자를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보존상태도 양호하며 18세기 불교조각의 기준작으로 삼을 만 하다는 점이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