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창 유씨: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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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종 연간에 두진(痘疹)·마진(麻疹) 등의 질병이 크게 유행하여 생명을 잃는 자가 많았다.
이에 자극을 받아 그의 집에 전해 내려오던 ≪마진경험방 麻疹經驗方≫을 참고로 하여 1696년(숙종 22) ≪마진편 麻疹篇≫ 1책을 저술하다. 이 책은 마진에 대한 전문의서로서 오랫동안 필사본으로 전해져왔으나, 1931년 경상남도 진주에서 박주헌(朴周憲)에 의하여 출간되었다. 유이태는 ≪마진편 麻疹篇≫ 이외 ≪인서문견록≫, ≪실험단방≫, 잃어버린 저서 2권, 1940년 초반 화재로 소실된 ≪침구서≫와 ≪부인방≫이 있다.
조선의 명의 유이태는 거창유씨로 반상(班常)과 남녀노소가 엄격히 구분되어 있던 시대에 사대부 가문의 유학자 의원이다. 자는 백원(伯源)이고 호는 신연당(新淵堂)⦁원학산인(猿鶴山人)⦁인서(麟西)로서 1652년 거창군 위천며 사마리에서 정유재란 안의 황석산성에서 순절한 의병장 유명개의 현손이고 효자로 나라로부터 복호를 받은 유유도의 손자로 태어났다. 그의 나이 10세 전후에 부모님과 함께 외가가 있는 산청군 생초면 신연으로 이거하였으나 젊은 시절에는 거창 위천에서 임시로 잠시 거주하며 의술 활동을 펴기도 하였다. 1715년에 세상을 떠났고 묘소는 산청군 생초면 갈전리에 있다.
 
#그는 일생동안 정도(正道), 효도(孝道), 의도(懿道), 의도(醫道), 수도(壽道)의 5도(道)정신을 실천하였고, 병마에 고통 받는 환자들과 생사고락을 같이하였으며,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귀천(貴賤), 친소(親疎), 빈부(貧富), 민관(民官)을 구분하지 않고 백성을 사랑하는 애민(愛民), 백성을 보살피는 위민(爲民)의 박애정신으로 인술(仁術)을 펼쳤던 조선의 명의로서 중국의 명의 화타(華陀)와 편작(扁鵲)에 비유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