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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역사}}
 
'''양'''(梁, [[502년]] ~ [[557년]])은 중국 [[남북조 시대]] 강남에 건국된 남조의 3번째 왕조이다.
 
== 역사 ==
[[제 (남조)|남제]] 말기에 황제였던 [[소보권|동혼후]]는 폭정을 해 많은 대신들을 살해했고 먼 친척인 소의를 살해했다. 옹주자사로 양양에 있던 소의의 동생인 [[소연 (양)|소연]]은 폭군을 처단한다는 명분으로 군사를 일으켜 건강을 함락한 뒤 동혼후를 살해한 뒤 [[남제 화제|화제]]를 옹립했다. [[502년]]에 소연은 화제로부터 제위를 선양받아 양나라를 건국하니 그가 바로 [[양 무제|무제]]이다.
 
무제의 치세는 48년이란 긴 기간이었고, 그동안 내정을 정비하여 [[구품관인법]]을 개선했고 불교를 장려하여 국내를 안정시켰으며 문화를 번영시켰다. 대외관계도 비교적 평온하여 약 50년간 태평성대를 유지하여 남조 최전성기를 보냈다. 또한 무제의 맏아들인 [[소통 (양나라)|소명태자]]가 편찬한 《[[문선]]》은 후세에까지 전해지는 훌륭한 문헌이다.
 
그러나 무제의 50년에 걸친 치세 후반에는 불교에 너무 심취하여 스스로 동태사(同太寺)에 여러 번 투신이라는 것을 행하는 무모한 짓을 여러 번 일으켰다. 그럴 때마다 신하들은 막대한 돈을 들여 무제를 되찾아 왔기에 국고가 크게 궁핍해졌다. 퇴위 후 법황의 신분이라면 모르나 재임 도중에 황제를 잃는 일은 없었기 때문에 이런 황당한 일이 벌어진 것이었다.
 
[[548년]] [[동위 (북조)|동위]]의 무장이었던 [[후경]]이 투항해 왔다가 반란을 일으켜 수도인 [[건강 (지명)|건강]]으로 진격했다. 다음해 건강이 함락됐고 무제는 사로잡힌 뒤 쇠약해져 죽었다. 각지에 분봉되었던 종실의 여러 왕들은 형제나 삼촌, 조카들이었기에 서로의 이득을 보고 견제를 한 결과 모두 황제의 구출에 나서지않아 무제가 죽는 걸 보고만 있었다. 후경은 [[소강 (양)|간문제]]를 옹립했다가 [[551년]]에 간문제를 살해하고 예장왕 [[소동]]을 제위에 올린 뒤 선양을 받아 황제에 올라 건강에서 즉위했다. 각지에 주둔한 여러 왕들 중 가장 세력이 강했던 형주자사 [[양 원제|소역]]은 [[왕승변]]에게 대군을 주어 건강을 공격해 후경을 죽였다.
 
소역은 즉위한 뒤 황폐화된 건강을 버리고 강릉으로 수도를 옮기니 그가 바로 원제이다. 그러나 이 혼란을 틈타 남정에 나선 [[서위 (북조)|서위]]는 촉(蜀)에 있던 무릉왕 [[소기]]와 원제의 대립을 틈타 촉을 점령했다. 또한 양양을 가지고 투항해온 소찰을 이용하여 [[554년]] 강릉을 공함한 뒤 원제를 죽였고 그곳의 거민들을 관중으로 강제로 이주시켰다. 건강의 파괴와 강릉의 함락은 남조의 귀족들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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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대 황제 ==
{{틀:중국 황제 (양-남조)}}
 
{{틀:양나라의 황제}}
 
{{중국 남북조 시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