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평천: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TedBot (토론 | 기여)
잔글 봇: 문단 이름 변경 (같이보기 → 같이 보기)
사진 추가
6번째 줄:
풍덕천이 흐르는 [[풍덕천동]]은 과거 삼남대로에 속했으며 옛 수지면의 중심지였다. 원래 풍덕천 주변에는 문정·방축골·정자들·토월 등의 자연 마을이 있었으나 수지지구 택지 개발 사업에 의해서 옛 자취는 흔적도 없어졌다. 그나마 토월초등학교 토월정자(吐月亭子)가 있어 옛 지명의 일단을 유추해 볼 수 있으며, 토월공원에는 수령 10~100년 된 느티나무 군이 있어 옛 흔적을 찾아 볼 수 있다.
 
== 명칭유래명칭 유래 ==
* [[포은]] 선생이 [[선죽교]]에서 [[이방원]]이 보낸 자객 [[조영규]]에게 피살된 뒤 경기도 [[풍덕군]]<ref>풍덕군(豐德郡)은 역사적으로 경기도에 속해 있었다. 1914년에 풍덕군과 개성군이 합병해 개성군이 되었다. 이후 북한(조선인민공화국)은 1955년 장풍군, 판문군과 함께 개성직할시로 통합하다가 2003년 판문군을 폐지, 장풍군, 개풍군을 [[황해북도]]로 편입하였다. 현재는 [[황해북도]] [[개풍군]]으로 되어 있다.</ref>일부)에 일시 매장되었다가 뒤에 고향인 [[경상북도]] [[영천]]으로 천묘하고자 하였다. 그 면례 행렬이 옛 수지읍 풍덕리에 이르자 면례행렬 앞에 세웠던 명정이 바람에 날려 떨여졌다고 하는데 기록에는 삼남대로(三南大路)인 수원과 용인의 중간지점에 이르자 홀연히 명정이 떨어졌는데 지금의 묘소 자리인 [[모현면]] 능원리 문수산 하단이라 하고 뒷날 풍덕천(豐德川)이라 이름하였다.
 
* 남쪽으로 길을 떠나고자 하면 상여가 움직이지 않아 할 수 없이 명정이 떨어진 곳으로 가자는 뜻이라 하여 그쪽으로 발길을 돌리자 상여가 움직였고 그래서 장사를 지냈다고 한다. 용인과는 아무런 인연도 없는 이곳에 선생의 유택이 마련되었다는 것이다. “풍덕에서 오신다”라고 하여 풍덕래(豊德來)라고 한 것을 1914년 지명 표기 작업을 할 때 ‘올 래(來)’자를 ‘내 천(川)’자로 바꾸어 풍덕천(豊德川)이라 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풍덕천이 물이 깊어 명주 한 필이 다 들어갔는데 [[임진왜란]] 때 왜적이 풍덩풍덩 빠져죽어 풍덩내[川]라고 하던 것이 풍덕이 되었다는 일설도 존재한다.<ref>[http://yongin.grandculture.net/gc2/common/sub.jsp?pact=view_id&h_id=GC00900100 디지털용인문화대전 풍덕천]</ref>
 
== 사진 ==
<gallery>
파일:pungdukcheon2-dong.jpg|풍덕천을 본 모습
파일:백설교.JPG|풍덕천을 가로지르는 백설교
파일:풍덕천.JPG|성복천 정평천으로 나뉘기 전 풍덕천
</gallery>
 
== 각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