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도비쿠스 4세 인판스: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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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6년]] 친히 군사를 이끌고 [[작센]]을 침략한 마자르 족과 교전했다. [[907년]] 초 루트비히는 [[마자르 족]]이 국경지대를 넘어오자, 직접 군사를 이끌고 맞섰지만 [[프레센부르크 전투]]에서 병사를 잃고 처참하게 패배하였다. 그해 여름에도 마자르 족이 쳐들어와 직접 출정하였으나 [[907년]] [[7월 4일]] [[바이에른]]의 공작 리우트폴트와 대주교인 잘츠부르크의 테오트마르(Theotmar) 등을 잃고 말았다.
 
그는 이름뿐인 통치자에 불과했고, 어머니 [[네우스트리아의 오타]]는 903년경에 사망했다. 결국 마인츠 대주교 하토 1세와 프랑켄 공작 콘라트가 동프랑크 왕국의 실권자로 군림했다. 루트비히는 친정을 하려 했지만, 자주 병에 걸려 건강이 좋지 않아 자신의 정부를 통제할 수 없었다.
 
=== 혼란과 최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