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도비쿠스 4세 인판스: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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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트비히는 성장하면서 군권을 장악하고, 마자르족에 대한 군사원정을 벌였는데 별로 성공적이지 못했다. [[907년]] 그가 군사 통제권을 쥐었을 때는 이미 에르네스부르크 등의 도시들은 파괴된 상태였다. [[909년]] [[작센]]과 [[튀링겐]]에 [[마자르 족]]이 나타나자 루트비히는 [[바이에른]]의 [[불쾌공 아르눌프]]에게 도움을 청했다. 아르눌프는 [[로트 강]]변에서 [[마자르 족]]과 싸워서 격퇴했고, [[910년]] 루트비히는 친히 [[동프랑크 왕국]]의 [[육군]]을 이끌고 [[아우구스부르크]] 근처에서 [[마자르 족]]을 격파했다. 이어 [[레흐 강]] 근처 [[레흐펠트 전투]]에서 [[마자르 족]]을 상대했지만, 루트비히의 군사가 패했다. 마자르 족은 다시 발길을 돌려 [[슈바벤]]과 [[프랑켄]]을 약탈한 뒤 [[라인 강]]을 넘어 [[부르고뉴]]까지 쳐들어가 황폐화시키고 약탈을 감행하였다. 왕권의 실추를 막지 못한 그는 강력한 귀족이었던 프랑켄 공 콘라트를 제거하는데 협력한다. 그러나 콘라트의 아들인 [[콘라트 1세]]는 오히려 실권자 행세를 하게 된다.
 
[[910년]] [[마자르 족]]이 [[아우크스부르크]] 근처까지 쳐들어오자 유아왕 루트비히는 직접 군사를 이끌고 [[마자르족]]과 싸웠지만 루트비히의 군대는 참패하고 말았다. [[911년]] [[마자르 족]]의 군대가 [[슈바벤]]과 [[프랑켄]]을 약탈하고 [[라인 강]]을 넘어 [[부르고뉴]]로 건너갔지만 루트비히는 이를 막을 수 없었다. [[911년]] 9월 24일 루트비히는 [[프랑크푸르트|프랑크푸르트 암 마인]]에서 18살의 나이로 죽었다.
 
=== 사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