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한 헌제: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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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헌제의 선양과 죽음 ===
위왕 조조가 살았을 때는 제위를 유지하였지만, 조조가 죽고 그 아들 [[조비]]대에 이르러 조비의 신하들이 헌제에게 제위의 [[선위|선양]]을 강요한다. 강요를 감당할 수 없는 헌제는 조비에게 제위를 물려주려 하는데, 조비는 고사를 본받아 짐짓 선양을 거부하다가 이내 수락한다. 결국 수선대에서 선양식이 거행되고 결국 400년의 오랜 역사를 자랑한 한 황조는 이로써 완전히 멸망한다. 헌제는 선양한 이후 산양공으로 격하되었다. 폐위된 후 유비는 그가 죽은 것으로 오해하여 제사 지내고 시호를 효민황제라 하였다. 삼국지 연의에서는 조비가 선양을 받자마자 자객을 보내 헌제를 암살한다고 기술되어 있지만 실제로 천수를 누리다 제갈량이 죽은 해에 죽었다. 실제로 조비는 헌제 유협에게 황제 시절의 복식을 그대로 유지하도록 허락했으며 선배로서 대우했다. 이에 헌제 유협은 정치에는 관여할 수 없지만 일신은 편안하게 보냈다. 여기서 미스테리인게 그토록 천수를 누리면서 자신이 그토록 아끼던
 
황친 유비가 세운 촉한으로 망명하지 않았나는 의문이다 망명했다면 위나라에서의 위치보다 촉한으로 망명했다면 상왕대접을 받으며 황족예로 살았을수 있었을텐데 게다가 왕은
 
자신이 아끼던 황친유비였다 아마도 부인때문이라는 의견이있다 그의부인은 촉한이 그토록 멸시하던 조조의 딸이었던것
 
== 친족관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