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훈: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24번째 줄:
 
== 생애 ==
[[1901년]] 경기도 과천군(현 서울특별시 동작구)에서 지주 집안의 태어났다. 심훈의 집안은 '친일적 시류에 순응하는 전통적인 양반 가문 출신의 중산지주 계급'으로, 심훈의 형은 [[친일파]]였다.<ref name="서적1">{{서적 인용 |저자=전국역사지도사모임|제목=표석을 따라 경성을 거닐다|날짜=2016-11-30|출판사=유씨북스|ID=ISBN 9791195695935|쪽=64-66 }}</ref> 경성제1고등보통학교(현 [[경기고등학교|서울 경기고등학교]])에 입학해 학교를 다니던 심훈은 4학년이던 [[1919년]] [[3·1운동]]에 참여하게 되고, 3월 5일 [[남대문]] 학생시위에서 구속되어 8개월형을 받아 투옥되었고, 학교에서도 퇴학 처분을 받으면서 집안과는 다른 길을 걷게 되었다.<ref name="서적1"/>
 
이듬해 [[1920년]]에는 중국 상하이로 건너가 위안장 대학교 철학과에 입학하였다. 이듬해 [[1921년]] 철학과를 중퇴한 뒤, 중국 항저우로 가서 [[저장 대학|저장 대학교]] 극문학과로 재입학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이듬해 [[1922년]]에 중퇴하고, 극문회를 조직하였다. 중국에 망명하는 동안 베이징에서 [[신채호]]와 [[이회영]] 등과 교우하며 열정적으로 독립운동을 부르짖었다.<ref name="서적1"/>
 
1924년 중국에서 돌아온 심훈은 <[[동아일보]]>에 사회부 기자로 입사하였으며, [[1926년]]에는 《탈회》를 연재하기 시작했다. 언론 운동단체 철필구락부가 언론옹호발표회를 계기로 일제로부터 해산 처분을 받고 ([[철필 구락부 사건]]), 심훈 역시 동아일보에서 해직당했다. 같은해 [[순종]]이 서거하자 지난 3·1운동과 마찬가지로 독립 운동이 발발할 것이라 예감하고 <[[시대일보]]>에 '통곡 속에서'라는 이름의 시를 게재하였다.<ref name="서적1"/>
 
1927년에는 일본으로 건너가 영화를 공부하고, 식민지 현실을 다루는 영화 <[[먼동이 틀 때]]>를 집필, 각색, 감독하여 [[단성사]]에서 상영하였다. 이후 <[[조선일보]]>에서 '동방', '불사조' 등의 소설을 연재하다가 일제의 게재 중지 조치로 연재를 중단하게 된다. 이 당시 심훈의 대표작이기도 한 <[[그날이 오면]]>은 3·1운동 기념일에 발표된 시로, 원래는 [[시집]]으로 발간될 예정이었지만 일제의 검열로 인해 출판이 거절당하기도 했다.<ref name="서적1"/>
 
[[1935년]] <[[동아일보]]>가 [[브나로드 운동]]을 진행하고, 창간 15주년을 맞아 농촌과 어촌을 배경으로 하는 장편 소설을 공모하였다. 심훈은 충남 당진에 머물며 조카의 야학 운동과 공동경작회 활동을 소재로 삼아 장편 《[[상록수]]》를 공모하였고 바로 당선되었다.<ref name="서적1"/> 당선 상금으로 [[상록학원]]을 설립해 농촌 학생들의 교육을 도우기도 했다. 심훈은 상록수를 영화화하고자 했지만 일제의 방해로 좌절되었고, 단행본 출간을 목표로 집필에 몰두하던 중 [[1936년]] 장티푸스로 인해 36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 사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