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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어를 마치고 뉴욕으로 돌아온 1966년 7월, 딜런은 자택인 우드스탁 근처의 도로에서 모터사이클을 몰고 가던 중 사고를 당해 기나긴 요양 생활에 들어가게 된다. 이 사고는 당시 언론에 의해 알려진 바와 달리 큰 사고는 아니었지만 그가 뮤직 비즈니스계에서 도피하기 위한 의도로 자의에 의해 부풀려진 부분이 크다고 전해진다. 그는 이후 몇 개 정도의 이벤트에 모습을 드러낸 것을 제외하곤 1974년까지 콘서트 활동을 일체 중단하기에 이른다.<ref name=":4" /> 그는 우드스탁에 집을 짓고 아이들을 키우면서 마치 은둔자와도 같은 나날을 보내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 시기 그와 마찬가지로 우드스탁에 정착한 더 밴드의 멤버들과의 본격적인 교류가 시작된다. 한때 [[로니 호킨스]]라는 블루스 록계의 보컬리스트의 백 밴드(당시는 더 혹스(the Hawks))로서 4년 가까이 투어 활동을 한 더 밴드는 가혹한 조건 속에서 베테랑 투어 밴드로 성장했다.
 
더 밴드의 멤버들은 빅 핑크라 이름 붙인 임대주택에 모여 살고 있었는데, 그곳 지하에는 그들이 자신의 손으로 직접 만든 스튜디오가 있었다. 어느 날 그곳을 방문한 딜런이 더 밴드의 멤버들과 즉흥적인 세션을 가지게 되었다. 주로 [[루츠록]](Roots Rock) 장르의 음악을 만들었는데, 그때 녹음한 마스터 테이프가 어느샌가 해적판으로 나돌게 되며 그때까지 완전한 무명이었던 더 밴드의 존재가 세간에 알려지게 된다. 그리고 그것을 계기로 그들은 1975년년1975년 대망의 데뷔 음반 《Music From The Pink》을 발매하게 된다.<ref name=":4" />
 
더 밴드와의 세션 후, 활동을 재개한 딜런은 1967년 즈음 [[컨트리 뮤직|컨트리]]의 본고장인 [[내슈빌]]에서 새 음반 녹음에 착수한다. 불후의 명작이라 일컬어지는 전작 《Blond On Blond》(1966년) 또한 내슈빌에서 녹음되었다. 당시 많은 젊은 아티스트들이 사이키델릭이라는 새로운 경향에 눈 돌릴 무렵, 굳이 보수적이고 한물간 음악으로 취급받고 있던 컨트리 뮤직을 선택한 것이었다. 서부 개척 시대 무법자의 이름에서 착안한 음반 《[[John Wesley Harding]]》은 같은 내슈빌에서 녹음을 했는데, 전작과 달리 성경의 내용을 하나의 테마로서 등장시킨 작품이다.<ref name=":4" />